최동현기자
국내 한 대형 손해보험사 투자설명(IR) 담당자는 최근 모건스탠리 측으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지난해부터 국내 보험업계에 도입된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에 기초한 회계처리 방식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모건스탠리는 우리나라 금융당국이 연내 회계제도 개편을 추진 중이라 기존에 발표됐던 실적이 일부 바뀔 수 있다는 내용을 듣고는 "매우 괴상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IFRS17을 둘러싸고 시장이 혼란스럽다. IFRS17은 투자자들이 보험사 재무상황을 보다 명확하게 파악하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그런데 당국이 보험사의 계리 자율성을 보장하는 IFRS17에 번번이 개입하면서 국내뿐 아니라 해외투자자까지 회계정보의 신뢰도에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보험회계 기준 하나가 바뀔 때마다 보험사 재무정보가 들쑥날쑥하기 때문이다.
최근 논란이 된 건 당국이 보험업계에 공개한 '무·저해지 보험상품 해지율 가정 개편안'이다. 통상 무·저해지 보험 해지율은 보험계약 연차가 늘어날수록 낮아진다. 개편안에서는 해지율이 서서히 낮아지기보다는 보험계약 5년차부터 급격히 꺾인다. 해지율을 상당히 보수적으로 가정한 탓이다. 이는 손보업계가 현장에서 쌓은 데이터와는 동떨어진다. 손보업계는 2016년 7월부터 약 8년간 무·저해지 보험을 판매한 통계에 기초했을 때 해지율이 완만하게 낮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당국 개편안이 실제 현장에 적용될 경우 시장 혼란은 가중될 전망이다. 최근 손보사 10곳이 이례적으로 당국 개편안에 반대하는 공동의견서를 제출한 것도 이런 이유다. 해지율 가정이 급격히 낮아지면 보험사는 그만큼 미래에 고객에게 지급해야 할 보험금을 더 비축해둬야 한다. 이는 보험부채를 키우고 가용자본을 감소시켜 보험사 재무건전성 지표인 지급여력비율(K-ICS·킥스)에도 악영향이다. 기존에 무·저해지 보험을 많이 판매한 일부 중소형사는 지급여력비율이 당국 권고안인 150% 아래로 떨어지고, 적자로 전환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한 보험사 임원은 "보험사의 낙관적 해지율 가정이 문제라면서 정작 당국은 지나치게 보수적인 가정을 강요한다"며 "회계 규제 때문에 회사가 망할 걱정을 하는 게 말이 되나"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정부가 추진하는 밸류업(기업가치 제고)에도 역행한다. 회계처리 방식이 자주 바뀌고 실제 기업 상황과도 맞지 않으면 국내 보험사의 재무정보에 대한 신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국내 개인·기관투자자를 비롯해 주식시장(코스피)의 35%를 차지하는 외국인 투자자마저 등을 돌리게 만들 수 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 8월 보험업권 간담회에서 상반기 '실적 부풀리기' 논란을 빚은 IFRS17에 대해 개선안을 마련하고 올해 말 결산부터 이를 적용하겠다고 밝혔었다. 현재 그 일환으로 무·저해지 보험 해지율 가정을 비롯해 연령대별 손해율 가정, 할인율 제도 개편 등 보험회계와 관련한 다양한 개편안이 논의되고 있다. 10월이 10일도 채 남지 않았지만 날짜에 쫓겨 서두르지 않길 기대한다. 조금 더디더라도 업계와 더 소통해 보험회계의 신뢰를 탄탄히 다지는 게 밸류업의 첫걸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