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유교기자
회계업계가 2025 사업연도의 대형 상장사 '자유수임' 경쟁으로 뜨겁다. 비교적 조용했던 지난해와 달리 시장에 '대어'가 폭발적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업계 판도를 바꿀 만한 규모"라는 말도 나온다.
22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자산 2조원 이상 자유수임 대상 기업이 30여곳에 달한다.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를 비롯해 상장사 시가총액 20위 안에 드는 기아·NAVER·삼성물산·현대모비스·하나금융지주 등이다. 이 밖에도 아모레퍼시픽과 SK텔레콤 등 각 업종을 대표하는 '대장주'와 삼성증권, 현대제철 등도 회계감사 자유수임 시장에 풀렸다. 이 기업들은 현재 감사인 선정 작업에 착수했으며 내년 2월 전까지는 새로운 감사인을 지정해야 한다.
감사 시장에 신규로 풀린 기업들은 신(新)외부감사법에 따라 2022 사업연도에 감사인 강제 지정을 받은 곳이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에 따른 것이다. 금융당국으로부터 감사인을 3년간 지정받은 기업은 다음 6년간 감사인을 자유롭게 선임할 수 있다. 지난해 자유수임 시장에 풀렸던 자산 2조원 이상 대기업이 한 자릿수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3배 이상 늘었다.
늘어난 일감을 두고 빅4(삼일·삼정·안진·한영)의 경쟁이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요즘 법인들의 관심은 온통 자유수임에 쏠려있다"며 "프레젠테이션 준비 등으로 감사 시즌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회계업계의 감사 시즌이란 통상 1~3월을 지칭한다. 감사보고서가 공시되는 3월15일까지 야근을 불사하며 업무 강도가 극에 달하는 시기다.
법인마다 사정이 조금씩은 다르다. NAVER·SK텔레콤·삼성물산·한국전력공사·아모레퍼시픽·현대모비스 등의 기존 감사인이었던 EY한영의 경우 기존의 수주 규모를 지켜야 하는 입장이다. 기아와 삼성증권의 감사인이었던 삼정KPMG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반면 3년 전 금융당국의 강제 지정 당시 물량을 많이 뺏겼던 삼일PwC와 딜로이트안진은 신규 수주를 위해 각축을 벌이고 있다. 뺏고 뺏기는 감사 수주전이 벌어지고 있다.
회계법인은 일반적으로 감사와 세무, 경영자문 부문 등의 사업 부문을 영위한다. 빅4 중 삼정KPMG를 제외하고 모두 별도 법인으로 운영하는 컨설팅까지 총 4가지 사업으로 구분된다. 회계법인만 봤을 때 감사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적게는 29.62%(안진)에서 많게는 45.98%(한영)에 달한다. 회계법인의 '체급'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얘기다. 2023 회계연도 기준 매출액은 삼일PwC가 3600억원으로 가장 많다. 삼정KPMG(2893억원), EY한영(2209억원), 딜로이트안진(1525억원)이 그 뒤를 잇는다.
주기적 지정제의 주기를 계산했을 때 2026 사업연도에는 자유수임으로 풀리는 2조원 이상 기업이 100개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때문에 이번 자유수임 경쟁을 시작으로 "업계 순위가 바뀔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삼정KPMG가 업계 2위를 굳힐 수 있었던 배경도 2년 전 자유수임으로 풀렸던 삼성전자의 감사를 수주한 영향이 컸다. 신외감법 도입 이전엔 삼성전자를 포함한 삼성그룹의 회계감사를 사실상 삼일PwC가 독점해왔다. 삼일이 오랜 기간 업계 1위인 이유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