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만 '가슴 커지는 석류주' 마시라는 회장님[시시비비]

경남상의 이끄는 최재호 무학 회장
식사자리 여성 대상화 발언
공개 사과하고 책임지는 모습 보여야

최재호 경남상공회의소협의회 회장이 빈약한 성인지 감수성을 드러냈다. 최 회장은 지난달 경남상의 정례브리핑 후 기자들과 점심 식사 자리에서 자신이 운영하는 주류회사 무학에서 생산한 석류맛 탄산소주를 “여자 술”이라며 참석한 여성기자에게 전달하라고 했다. 석류를 먹으면 유방이 커진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그는 “여자는 가슴이 커져도 되는데 남자는 가슴 커지면 안 된다”는 발언도 했다.

최 회장은 식사 자리 이후 해당 여성 기자에게 전화해 사과를 했는데, 이 과정에서 나온 해명이 더 가관이다. 자신의 자녀가 석류를 먹고 가슴이 커져 남자에게는 석류를 먹지 말라고 한다는 것이다. 석류는 ‘이소플라본’이라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의 전구물질을 함유해 갱년기 여성에게 도움이 되는 과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석류를 먹으면 유방이 커진다는 속설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 음식물 섭취를 통해 유방이 커졌다는 목격담도 황당하지만, 이같은 변명의 저변에 자리잡은 ‘여자는 가슴이 커야한다’는 남성 중심의 사고를 재확인한 것같아 불쾌하다. 이는 여성을 인격체로 바라보지 않고 젖을 물려 자녀를 키우는 역할이나 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채우는 존재로 인식하는 전형적인 여성에 대한 대상화다.

성적 대상화는 여성이 자신을 주체로 보지 못하도록 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특히 여성의 업무상 성적 대상화 경험은 일몰입을 방해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백근영·서영석 연세대 교수팀이 서울과 경기 지역에 근무하는 직장 여성 252명을 대상으로 여성 직장인의 성적 대상화 경험과 일몰입 관계를 살펴본 결과, 대인관계에서 성적 대상화 경험은 내면화와 신체감시를 매개로 일몰입에 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여성에 대한 대상화는 여성의 참석 여부를 불문하고 공적 자리는 물론, 사석에서도 경계해야 한다.

그런데도 최 회장의 해당 발언이 ‘말실수’라며 당시 식사자리에 참석한 여기자에게 사과하면 그만이라는 식의 태도는 그의 성인지 감수성이 얼마나 낮은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경남지역 여성단체가 "최 회장 스스로 성희롱 예방 교육을 받고 조직문화 개선을 위한 대책을 수립하라"고 촉구한 이유다.

코미디는 최 회장이 맡고있는 경남상의 회장은 무보수 명예직이기 때문에 성희롱 예방교육 대상이 아니라는 경남상의다. 최 회장은 경남지역 기반의 주류회사 무학의 대표이사다. 남녀고용평등법 제13조제2항에 따르면 법인의 대표이사는 성희롱 예방 교육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다.

최 회장이 맡은 경남상의 회장은 경남지역의 기업을 대표하는 막중한 자리다. 또 무학은 1998년 코스닥 시장에서 기업공개(IPO)한 뒤 코스피로 이전한 상장사다. 최 회장이 공개 사과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하는 이유다.

무학은 1929년 소주와 청주를 제조하는 소화주류공업사로 시작해 최 회장의 부친인 고(故) 최위승 명예회장이 인수해 무학양조장으로 상호를 변경하고, 희석식 소주 ‘무학’을 제조해온 기업이다. 1985년 무학에 입사한 최 회장은 2006년 '좋은데이' 출시를 주도하며 주류시장에서 저도주로 소주의 혁신을 이끌어냈다. 좋은데이는 중장년층 남성들이 즐기는 소주를 여성과 젊은층도 가볍게 즐기는 부드러운 술로 이미지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 회장이 식사 자리에서 준비한 '좋은데이 톡시리즈' 역시 그가 직접 밝힌데로 여성을 타겟으로 내놓은 술이다. 여성을 사람이 아닌 수단으로 여긴다면 해당 제품들은 외면받을 것이다.

유통경제부 지연진 기자 gyj@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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