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정일웅기자
“시장에서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이라면, 공급자에게 경쟁력은 필수요건이 됩니다. ‘남다른’ 상품성으로 수요자의 구미를 당기는 동시에 만족감을 높이는 게 중요합니다. 학령인구 감소에 대응해야 하는 대학가 역시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지난 11일 오용준 국립한밭대 총장을 만났다. 오 총장은 올해로 4년 임기의 반환점을 돌았다. 취임 당시 오 총장은 ‘남다른’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다른 대학과 차별화된, 경쟁력 있는 대학을 만들어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겠다는 것이 그의 취임 일성이다.
오 총장에게 경쟁력은 곧 ‘혁신’이다. 대학 수는 일정하지만, 신입생 수는 눈에 띄게 감소하는 현실에서 대학이 변화하지 않으면, 명맥을 이어가기 어렵다는 인식이 밑바탕에 깔렸다.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생각(계획)을 실천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생존을 위한 전략이라면 주저할 틈이 없어야 한다. 한밭대가 지난해부터 프랭클린 W.올린공과대를 대표 롤모델로 삼아 대학의 체질을 바꿔 가는 데 공을 들이는 것도 같은 이유다.
올린공과대는 학생 주도로 진행되는 프로젝트 방식의 커리큘럼, 학과 간 칸막이를 없앤 융합 교육, 실험 위주의 현장 중심 교육 등을 강점으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대학이라는 이미지를 각인했다. 이 결과 올린공과대는 개교 4년 만인 2006년 ‘뉴스위크’가 선정한 미국 25개 명문대학(뉴 아이비스)에 포함됐고, 한밭대뿐 아니라 세계 각지의 여러 대학이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는다.
오 총장은 “학령인구 감소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대학가에 위기감도 고조된다”면서 “한밭대는 이러한 위기감 속에서 다른 대학과 차별화되는 남다른 강점(경쟁력)을 가져야 한다고 취임 당시부터 강조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린공과대를 롤모델로 혁신을 꾀하는 이유도 다름 아니다”며 “올린공과대의 강점을 한밭대 실정에 맞춰 변형·적용해 한밭대만의 새로운 강점을 창출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오 총장은 길다 바라비노(Gilda A. Barabino) 올린공과대 총장을 직접 만나 양 대학이 교류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 이어 올해는 한밭대 교수 8명이 올린공과대에 파견돼 현지에서 이뤄지는 교육방식을 직접 경험하고, 교내 교수들과 결과를 공유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를 기반으로 한밭대는 이르면 내년부터 본격적인 체질 변화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대표적인 변화는 ‘융합혁신대학 모형’의 적용이다.
올린공과대 등을 벤치마킹해 설계한 이 모형은 기본전공을 기반으로 사회 수요형 융합 전공을 이수(복수전공)해 산업계 등 수요에 부응한 인재를 양성하고, 경험과 응용력 기반의 인재가 배출될 수 있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획일적 판서 교육이 아닌 경험 중심에 팀 프로젝트(융합 전공 분야) 방식의 교육을 지향함으로써 재학생이 대학에서 창의·종합적 지식을 축적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기본방향이다.
예컨대 융합혁신대학 모형은 신소재를 기본전공으로 정한 재학생이 에너지기술, 나노반도체, 우주·국방 등 연관 분야를 융합 전공으로 선택해 이수하는 것을 의무화함으로써 기본전공을 기반으로 융합 분야를 두루 체득할 수 있게 한다.
오 총장은 이 과정에서 ‘경험’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경험 중심이라는 말은 판서를 통한 주입식 이론교육에서 탈피하겠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직접 경험은 이론보다 확실하게 이해·관철할 수 있는 교육방식”이라며 “여기에 더해진 팀 구성원 간의 협동 프로젝트는 경험적 교육방식에 효과를 극대화하는 역할을 하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기적으로는 한밭대에서 실험적으로 진행할 대학 혁신과정이 다른 대학으로도 번져갈 수 있게 하는 복안도 내비쳤다. 오 총장은 “최근 한밭대는 충남대와의 통합이 잠정 중단되는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하지만 양 대학 간 통합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통합의 당위성을 고려할 때, 양 대학이 장기적 관점에서 언제든 통합을 위한 논의를 재개할 수 있다는 판단”이라며 “현재 한밭대가 추구하는 대학 혁신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향후 양 대학이 통합과정을 거쳐 하나의 창구로 경쟁력을 키워갈 때 유용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