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열기자
정동훈기자
미국의 자동차 무역적자 규모가 올해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할 전망이다. 과거부터 고가 차량을 많이 수입해 적자를 많이 보는 품목인데, 대선 이후 적자 구조를 해소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미국이 전동화 등 첨단 이동 수단 분야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기류가 거세진 터라 우리 기업에 미칠 영향도 만만찮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대중 강경 기조는 일차적으로 한국 기업에 반사이익을 줄 수 있으나 공급망 전반적으로 중국 의존도가 높은 만큼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표인수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은 "보호무역 기조가 강해지면서 무역 적자가 늘어나는 상황을 달갑지 않게 보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20일 미국 상무부 통계를 보면 올해 1~7월 기준 승용차 부문 적자는 905억달러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100억달러 이상 적자가 늘었다. 미국의 승용차 적자는 지난해 1450억달러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는데, 현 추세를 이어간다면 1년 만에 새 기록을 쓸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들어 자동차 수출은 주춤하는데 수입이 늘면서 적자 규모가 확대되고 있다.
국가별로는 멕시코와의 거래에서 보는 적자가 250억달러로 가장 많다. 그다음이 일본(233억달러), 한국(219억달러), 독일(98억달러), 캐나다(67억달러) 순이다. 우리나라는 승용차 적자 규모로는 세 번째지만 증가 폭으로는 가장 앞선다. 코로나19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승용차 적자에서 한국 비중은 11% 남짓에 불과했는데 올해 들어선 24%로 두 배 이상 늘었다. 현대차·기아가 미국 시장을 중요시하며 전략적으로 수출을 늘린 데다 한국GM 역시 미국 시장 판매를 염두에 두고 소형 차종을 중심으로 생산량을 늘린 영향이다.
우리로선 미국과 자동차 교역을 하면서 돈을 많이 벌었다는 뜻인데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일이다. 선거 전후로 자동차 적자 규모가 늘어난 점을 문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 한국으로부터 자동차 수입이 늘고 수출은 줄어든 점을 지적하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개정했다. 협정이 잘못돼 미국이 손해를 본다는 이유를 들었다.
공화당 후보로 나선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지 않더라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무역장벽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자동차 기업이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어 미국에 수출을 늘릴 수 있는 배경 가운데 하나가 중국으로부터 부품을 수급하며 가격 경쟁력을 갖춘 덕분이다.
미국은 당장 이달 하순부터 중국산 전기차 관세를 25%에서 100%로 높이기로 했다. 이런 조치를 적자 폭이 커진 자동차 분야 전반에 확대 적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일각에선 이를 관철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커넥티드카가 대표적이다.
이는 차량 간 통신정보를 주고받는 기술이나 부품을 뜻하는데, 중국산 부품을 쓴 커넥티드카를 규제하기 위한 사전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앞서 올해 2월 규제 초안을 발표했고 현재 각계 의견을 받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해 "자동차 산업의 글로벌 가치사슬이 매우 복잡하고 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며 "소비자에게 과도한 부담을 줘 궁극적으로 양국 정부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의견을 미국에 전달했다.
특히 자동차 원산지 규정이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미 FTA에선 자동차 원산지 규정이 35% 수준으로 상대적으로 느슨한 편이다. 외산 부품을 많이 쓰더라도 3분의 1 정도만 자국산 부품을 써 한국에서 최종 조립했다면 ‘메이드 인 코리아’로 인정해 미국에 수출할 때 관세 혜택을 받는다는 뜻이다. 미국은 과거부터 한미 FTA의 원산지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는데, 중국산을 규제하기 위해 한국 자동차에도 요구할 수 있다.
미국은 이미 한국산 철강재에 대해 수입 규제 조치를 취하고 있다. 2018년 트럼프 행정부 당시 보호무역 일환으로 물량할당제도(쿼터제)를 도입한 여파다. 철강 분야 대미 수출이 7년째 263만t 안팎에 묶여 있는 것도 그래서다.
당시 미 상무부는 "(미국산 철강의 수입 대체는) 미국이 국가안보상 필요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할 위험에 노출시키는 심각한 영향을 준다"며 53%의 관세를 부과하는 국가에 러시아, 중국과 함께 한국을 포함했다.
한국 철강 규제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었다. 우리나라 철강 수출은 중국산 철강을 수입해 가공한 뒤 미국에 수출하는 구조였는데, 이를 중국 정부의 우회 수출 경로로 본 것이다. 철강 업계는 미국의 ‘중국 철강 옥죄기’가 국내를 비롯한 유럽과 동남아시아 등 다른 역외 지역에서의 경쟁 심화를 초래할 수 있다며 경계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중국산 수입 규제에 따라 덤핑으로 들어오는 물량이 이미 늘어나고 있다"며 "가격 경쟁이 심화하면서 국내 철강사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대선 후 새 행정부에서 추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국내 철강 업계는 위축된 기류가 강하다. 수출 기반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철강 쿼터와 별개로 한국산 후판은 상계관세도 적용받고 있다. 현대제철과 동국제강 후판에 각각 1.08%의 상계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당시 미 상무부는 "한국의 값싼 산업용 전기가 한국 철강업체에 사실상 보조금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