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MO 2024]'말기 암은 시한부' 공식 탈출…최신 약 쓰니 생존율 뛰었다

2024 유럽종양학회 폐막

ADC·면역항암제 활용 시
'장기생존' 입증 연구 쏟아져
국내 급여화는 여전히 과제

안명주 교수 '여성종양학상' 수상 쾌거
유한·한미 등 국내기업도 연구결과 내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지난 13~17일(현지시간) 열린 2024 유럽종양학회(ESMO)는 '시한부 선고'가 당연했던 말기 암 환자들에게 희망을 준 학회였다.

13일(현지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막한 2024 유럽종양학회(ESMO) 행사장에 참가자들이 입장하고 있다.[사진=이춘희 기자]

암은 성장하면서 처음 생긴 장기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기로 공격 범위를 넓힌다. 이 단계가 '말기'로 불리는 진행성 또는 전이성 암이다. 수술도 어렵고, 쓸만한 약도 줄어 치료의 난도가 급상승한다. 진단과 치료법이 발전하며 대부분 암 환자의 5년 이상 살 확률이 70%를 넘어선 지금도 말기 암은 여전히 이 생존율이 절반을 넘지 못하거나 한 자릿수대인 경우도 수두룩하다.

'5년 생존' 연이어 입증해 낸 ADC·면역항암제

하지만 이번 ESMO에서는 항체·약물접합체(ADC), 면역항암제 등 최신 약제를 활용한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말기 암 환자도 오래 살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쏟아졌다.

낸시 린 미국 다나-파버암연구소 부소장이 13일(현지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2024 유럽종양학회(ESMO)에서 항체·약물접합체(ADC) '엔허투'의 유방암 환자의 뇌 전이 여부에 관계없는 효능을 입증하기 위해 진행된 '데스티니-브레스트12(DESTINY-Breast12)' 임상시험의 1차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사진=이춘희 기자]

아스트라제네카(AZ)와 다이이찌산쿄가 공동 개발해 글로벌 ADC 열풍을 주도하고 있는 엔허투는 유방암 환자의 뇌 전이 여부와 관계없이 효능을 보인다는 연구가 공개됐다. 전이성 유방암 환자 중 10~15%는 뇌로 암이 전이되는데, 이 경우 절반은 8개월 이상을 넘기지 못한다.

하지만 엔허투는 뇌 전이 유방암 환자의 90%를 1년 이상 살렸다. 연구 결과를 발표한 낸시 린 미국 다나파버암연구소 부소장은 "뇌 전이는 환자의 삶의 질과 예후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엔허투는 뇌 전이 여부에 관계없이 높고 일관된 1년 생존율을 나타냈다"고 설명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2024 유럽종양학회(ESMO) 현장에 마련된 기업들의 홍보부스 공간을 참석자들이 관람하고 있다.[사진=이춘희 기자]

AZ는 간암에서도 이중면역항암요법인 임핀지·이뮤도 병용투여를 통한 생존 연장을 선보였다. 간암은 뚜렷한 증상이 없다 보니 진단이 늦어 완치율이 30% 수준에 불과하다. 암이 떨어져 있는 다른 장기까지 옮겨붙은 '원격 전이'에 이르면 5년 생존율이 3%까지 낮아진다.

하지만 임핀지·이뮤도 병용요법은 환자 중 20%를 5년 이상 살려냈다. 면역항암제는 암이 면역체계를 피하기 위해 만든 가짜 통행증을 사전에 적발해 면역체계가 정상적으로 암을 공격하게 한다. 면역체계를 활용한 치료로 부작용 위험이 비교적 적어 안정적 치료가 이뤄진 것으로 평가됐다. 연구를 진행한 로렌자 리마사 이탈리아 후마니타스대 종양혈액학과 교수는 "전례 없는 장기생존 혜택을 입증했다"며 "간암 치료의 새로운 기준을 설정한 연구"라고 강조했다.

피터 슈미드 영국 런던 바츠암재단 교수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고 있는 2024 유럽종양학회(ESMO) 셋째날인 15일(현지시간) '고위험 조기 삼중음성 유방암에 대한 선행항임요법으로서 키트루다 및 항암화학요법 및 수술 후 보조요법 임상 3상 키노트(KEYNOTE)-522 연구의 전체 생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사진=이춘희 기자]

지난해 '세계 매출 1위 의약품'의 타이틀을 차지한 MSD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도 다양한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제대로 된 약이 없던 삼중음성 유방암에서 수술 전후로 키트루다를 투약할 경우 5년간 환자 87%를 살렸다. 말기 위암 환자에게서도 기존 치료법에 키트루다를 더할 경우, 기존 치료법만 썼을 때보다 사망 위험을 28% 줄였다.

이들 치료법은 모두 국내에도 허가돼있지만 국민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고 있는 건 엔허투 뿐이다. 라선영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키트루다의 유방암 요법에 대해 "환자가 조건을 충족하면 약을 써야 하는데 급여가 안 돼 있으면 실손보험 등이 있는지 물어봐야 하는 상황"이라며 "장기 생존 등의 결과가 나왔다면 급여가 안 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안명주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가 13일(현지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2024 유럽종양학회(ESMO) 개막식에서 'ESMO 여성 종양학상' 수상 기념 강연을 하고 있다.[사진=이춘희 기자]

이번 ESMO는 한국이 세계 암 학계에서 어떠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행사 첫날 개막식에서는 안명주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가 ESMO에서 수여하는 '올해의 여성종양학상'을 수상했다. 한국 연구자가 ESMO에서 상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안 교수는 "아직 성차별이 존재하는 가운데 여성 연구자를 발굴하고 육성·지원하겠다는 의미가 담긴 상"이라며 "협업을 통해 이 같은 차별을 극복해야 한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

산업계에서도 유한양행이 개발해 최근 국산 항암제로는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폐암 치료제 렉라자와 관련해 매우 드문 희소 변이에도 효과가 있다는 연구가 나오는 등 추가 개발 가능성이 제시됐다. 이외에도 한미약품, 루닛, 티움바이오, 에스티팜, 에이비온 등이 다양한 파이프라인 개발 현황을 소개했다.

바이오중기벤처부 이춘희 기자 spring@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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