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대 쓰레기 나오던 나라…맥주 찌꺼기를 '고단백 곡물가루'로 [음쓰의 재발견]⑥

덴마크 푸드 업사이클링 현장 르포
어그레인 맥주박으로 곡물가루 생산
노계 치킨스톡·버려지는 게 발효 육수

"챗GPT, 덴마크에서 주목할 만한 푸드 업사이클링 기업을 알려줘."

한국에서 만 하루가 넘게 꼬박 달려간 덴마크의 한적한 시골 마을 구머스마흐크바이(Gummersmarkvej)에서 챗GPT가 추천한 푸드 업사이클링 생산공장을 만날 수 있었다. 9000제곱미터(㎡)가량의 널찍한 부지에는 1000㎡ 규모의 푸드 업사이클링 업체 어그레인(Agrain) 공장이 들어섰다. 어그레인은 맥주 양조 후 남은 맥아의 찌꺼기인 맥주박을 활용해 다양한 풍미와 질감의 곡물가루를 생산하고 있다. 이 곡물가루는 빵과 피자, 디저트 등 다양한 레시피에 사용된다.

'어그레인' 맥주 찌꺼기의 변신…만능 고단백 곡물가루

덴마크는 한 때 유럽 최대 쓰레기 배출국으로 꼽혔다. 유럽 통계청(Eurostat)에 따르면 2015년 기준 1인당 연간 쓰레기 배출량은 789㎏ 가량으로,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친환경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면서 단기간에 쓰레기를 성공적으로 줄인 나라가 됐다.

어그레인을 운영하는 '서큘라 푸드 테크놀로지(Circular Food Technology)'도 현재의 경제 시스템이 더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에서부터 시작됐다. '자원 채취→대량 생산→폐기'의 과정으로 진행되는 기존의 '선형 경제(Linear Economy)'에서 벗어나 버려지는 자원의 순환망을 구축해 투입되는 자원과 에너지를 최소화하는 '순환 경제(Circular Economy)' 체제로 전환할 때 비로소 글로벌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고, 미래 세대의 부담도 줄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2018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시작한 서큘라 푸드 테크놀로지는 어그레인이라는 푸드 업사이클링 브랜드를 론칭해 관련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곡물이란 뜻의 브랜드명처럼 어그레인은 버려지는 곡물의 업사이클링에 집중하고 있다.

서큘라 푸드 테크놀로지의 창립자인 아비아야 리만-안데르센(Aviaja Riemann-Andersen) 대표는 "생태용량을 초과해 자원이 낭비되는 선형 식품 시스템의 문제는 주변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다"며 "식품처럼 꽤나 보수적인 시스템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식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재료를 선택해야 한다. 곡물은 모든 문화권의 식단에서 중요한 재료인 만큼 범용성과 확장성에 있어서 최적의 재료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왼쪽부터)덴마크 업사이클링 푸드 업체 '서큘라 푸드 테크놀로지'의 아비아야 리만-안데르센(Aviaja Riemann-Andersen) 대표와 예스퍼 클리먼트(Jesper Clement) 운영 총괄.[사진=구은모 기자]

어그레인은 맥주 양조 후 남은 맥아의 찌꺼기인 맥주박을 활용해 다양한 곡물가루와 크래커 등을 생산하고 있다. 맥주박은 전 세계에서 매년 약 4000만t이 발생하고, 덴마크에도 '칼스버그'를 비롯해 수많은 맥주 양조장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재사용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워 매립과 소각 과정에서 많은 양의 탄소만 배출시키며 폐기되고 있다.

어그레인은 맥주박이 유럽식품안전청(EFSA) 규정상 식품의 원재료로 사용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식품 부산물인데다 대부분 목적 없이 폐기되고 있는 만큼 공급도 용이해 푸드 업사이클링 사업의 출발점으로 삼기에 좋은 재료라고 판단했다. 리만-안데르센 대표는 "어그레인의 기술력은 재료를 다루는 온도와 타이밍, 배합 비율 등 생산과정의 알고리즘에 있는 것이지 설비나 공정 자체에 있지 않다"며 "푸드 업사이클링은 복잡한 기술을 새로 개발할 필요가 없고, 자원도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푸드테크의 핵심 분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재료인 맥주박(왼쪽)과 업사이클링을 통해 완성된 곡물가루.[사진=구은모 기자]

업사이클링을 통해 완성된 어그레인의 곡물가루(Spent Grain Flour).[사진=구은모 기자]

실제 어그레인의 생산 공정은 '압착→건조→분쇄' 3단계로 단순화할 수 있다. 원재료인 맥주박을 스크류 프레스에서 압착해 수분 함량을 절반 수준까지 낮춘 다음 건조기로 옮겨 뜨거운 바람으로 곡물을 말린다. 바짝 마른 맥주박은 마이크로미터(㎛, 0.001㎜) 단위로 분쇄해 가루 형태로 만들고, 이후 포장 과정을 거쳐 최종 완제품이 된다.

현재 어그레인은 자신들의 맥주박 업사이클링 기술과 프로세스에 대한 라이센스를 통해 상업적인 규모 확장을 계획하고 있다. 그는 "기술과 설비가 복잡하면 확장이 더딜 수 있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설비는 어느 나라에서나 구매할 수 있는 것이고, 기술 역시 라이센스를 전수하면 어느 나라에서나 활용이 가능하다"며 "훗날 누군가가 푸드 업사이클링에 대해 챗GPT에 묻는다면 어그레인에 답이 있다고 답변할 날이 오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은퇴한 노계로 음식에 깊은 풍미 더한다

산란계로 만든 리듀스드의 치킨스톡.

코펜하겐 북부 노하운(Nordhavn)에 자리 잡은 '리듀스드(Reduced)'도 식품 공급망에서 손실되는 다양한 식재료와 부산물 그리고 소비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2020년 설립됐다.

리듀스드는 상품성이 낮은 가축 부산물과 채소, 과일 등을 활용해 다양한 육수와 스톡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알을 낳는 산란계를 활용한 치킨스톡이 대표적이다. 산란계는 육질이 단단해 식용으로 사용하기에 대체로 적합하지 않다. 이로 인해 산란계가 더 이상 알을 낳지 못하게 되면 가축사료로 사용되거나 대부분 그대로 버려지는데, 그 양이 덴마크에서만 매년 800만kg에 달한다. 로렌조 티렐리(Lorenzo Tirelli) 리듀스드 연구·개발(R&D) 총괄은 "산란계를 구워서 분쇄하고 이를 발효하는 방식으로 풍미를 이끌어내 스톡으로 만들고 있다"며 "닭고기 1kg을 생산할 때 이산화탄소 8kg이 배출되는 만큼 산란계를 폐기하지 않고 업사이클링하면 귀중한 천연자원을 더 잘 활용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로렌조 티렐리(Lorenzo Tirelli) 리듀스드 연구·개발(R&D) 총괄이 생산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구은모 기자]

해안 게를 활용한 육수도 생산한다. 덴마크에는 해안을 따라 120억마리의 게가 번성하고 있고, 그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 중 대다수는 어류와 조개류 개체 수에 위협이 되는 생태계 교란종이다. 티렐리 R&D 총괄은 "이런 게들은 어획 과정에서도 많이 잡히는데, 덴마크에선 위해종으로 분류되는 해산물을 다시 바다로 돌려보낼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육지로 가져와 폐기물이 된다"며 "우리는 껍질이 단단하고 살이 적어 아무도 사려고 하지 않는 이 게를 kg당 50~80센트 정도의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해 해산물 풍미가 진한 육수로 탈바꿈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리듀스드는 주로 발효 기술을 활용해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탈리아 로마 출신인 티렐리 R&D 총괄은 "리듀스드에 오기 전 레스토랑에서 셰프로 일하면서 발효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배웠고, 김치를 비롯해 미소, 쇼유, 아마자케 등 아시아의 발효음식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발효는 식품의 유통기한을 연장하는 데 도움이 되고 무엇보다 풍미를 만들어내는 훌륭한 방법이라는 점에서 스톡과 육수 제품의 감칠맛을 이끌어내는 데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발효 과정에 사용되는 발효제인 일본식 누룩 '코지'를 만들 때도 도정하는 과정에서 깨진 쌀을 업사이클링해 사용한다.

리듀스드는 업사이클링 과정에 사용되는 발효제(일본식 누룩 코지)를 만들 때도 도정 과정에서 깨진 쌀을 업사이클링해 사용한다.[사진=구은모 기자]

티렐리 R&D 총괄은 "푸드 업사이클링은 이미 우리 주변에 익숙하게 사용되고 있는 오래된 미래"라며 "오래된 빵으로 새로운 수프를 만드는 것처럼 10년간 셰프로 활동하면서 업사이클링 요소는 이미 요리에 녹아있었다"고 강조했다. 리만-안데르센 대표도 "우리 어머니도 닭 한 마리를 사면 버리는 것 없이 모든 것을 사용했다"며 "업사이클링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기보다는 과거 우리가 음식을 생산하고 만들어 먹던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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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경제부 구은모 기자 gooeunmo@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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