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기자
"5년 만에 추석이라고 친척들을 다 뵙네요. 명절 연휴는 원래 고년차 전공의들도 예외 없이 근무할 정도로 바빴거든요."(사직 전공의 A씨)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사표를 내고 의료 현장을 떠난 뒤 첫 명절을 맞았다. 명절이면 응급실을 찾는 환자가 평소보다 2~3배 급증하는 데다 병동에 입원한 환자들을 관리하기 위해 통상 전공의들이 남아 병원을 지켰다. 이제 병원을 떠난 사직 전공의들은 수년 만에 "명절다운 명절을 보내게 됐다"면서도, 곳곳에서 빚어지는 의료 공백 사태에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수도권의 한 상급종합병원 바이털과(분만·소아·화상·심뇌혈관 등)에서 수련 중 사직한 A씨는 "입원 전담 전문의가 있지만 통상 연휴나 주말, 밤엔 근무하지 않는다. 그 공백을 전공의들이 모두 메워왔으니 사실상 매일 출근할 수밖에 없었다"며 "명절에 친척을 보러 가는 건 애당초 가능하지 않았고, 연휴가 길수록 전공의들은 더 쉬지 못하는 구조라 오히려 짧은 연휴가 되길 바랐다"고 했다.
또 다른 사직 전공의 B씨도 "명절마다 저년차부터 고년차까지 모든 전공의가 근무했다"며 "연휴 기간 내내 근무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당직 날이 아니더라도 환자가 쏟아지는 상황이나 저년차들의 백업 콜에 항시 대기를 하느라 멀리 가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고 말했다. 최근 의원급 병원으로 자리를 옮겨 근무하고 있는 B씨는 "이번 연휴에는 3박4일 동안 온전히 가족과 시간을 보낼 계획"이라고 했다.
수련은 그만뒀지만, 응급의료 현장에 남아있는 전공의도 있다. 지역의 한 상급종합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였던 C씨는 사직 후 같은 지역의 종합병원 응급실에 취업했다. 그는 "명절엔 환자가 많다 보니 근무하는 의료진도 많을 수밖에 없어 고년차들도 예외 없이 병원에 나와 있었다"고 수련 당시를 회상했다.
C씨는 그러면서 "사직 후 종합병원 응급실에 취업했기 때문에 이번 명절 사흘 중 이틀을 근무할 예정"이라며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이 환자를 많이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종합병원급 응급실에 환자가 많이 몰릴 것 같아 우선 눈앞의 환자를 살리는 데 집중하겠다"고 전했다.
전공의 사직으로 인한 공백은 고스란히 의대 교수(전문의)들의 몫이 됐다. 전국의과대학교수비상대책위원회 공보 담당인 고범석 서울아산병원 교수는 "(과거) 명절의 경우 주로 전공의 선생님들이 병동 환자들을 관리해왔다"며 "교수들은 당직이 아닌 경우 상주하지 않고 대신 응급 콜에 대기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고 교수는 "(현재는) 병동에 환자들이 있으니 누군가는 병원에 남아 있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번 명절 기간엔 각 과에서 교수들이 병동 환자를 나눠 관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수도권의 한 종합병원 응급의학과 D교수는 "20년 넘게 응급의학과 의사로 살면서 매년 설날, 추석 다 병원에서 보냈기에 숙명이려니 한다"면서도 "이번엔 닷새 연휴 중 세 번을 당직을 서야 하는데, 그저 큰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