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2도]자이니치는 '파친코'에 갇히지 않았다

세월 흘러도 불평등한 처지 바뀌지 않아
여전히 외국인 취급…경찰관 등 할 수 없어
김경득 등 '파친코' 솔로몬처럼 역전 시도

애플TV+ '파친코'는 일제강점기부터 1989년까지 자이니치(在日) 가족사를 조명한다. 각각의 삶은 신산하기 그지없다. 하루하루가 멸시와 냉대의 연속이다. 평범한 일자리조차 구할 수 없다. 하나같이 일본인이 피하는 일에 뛰어들어 굶주림을 해결한다. 그중 하나가 파친코업이다. 조직 폭력배가 운영한다는 인식이 강해 천한 일로 치부된다. 선자(김민아·윤여정) 가족에게는 생존을 이어갈 유일한 수단이다. 불굴의 의지로 고난을 극복하며 남부럽지 않은 경제력을 얻는다. 그렇다고 불평등한 처지까지 바뀌진 않는다. 선자의 손자 솔로몬(진하) 또한 혐오와 멸시를 받는다.

그로부터 30년 이상 흐른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자이니치는 여전히 외국인으로 취급받는다. 일반 재일 외국인은 '재류 카드', 특별영주권자는 '특별영주 증명서'라는 IC칩이 내장된 카드를 발급받아야 한다. 과거 외국인 등록증처럼 상시 휴대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경찰관이 제시를 요구하면 보관 장소까지 동행해 제시해야 한다. '파친코'에서 주목하는 직업은 어떨까. 여전히 자이니치가 할 수 없는 일은 많다. 대표적 예가 국회의원, 지방의회 의원 등 선거로 선출되는 정치가다. 경찰관, 공립학교 교사 등도 불가하다. 같은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라 같은 사회에서 생활해도 태생적으로 꿈이 제한된다.

전후(戰後)만 하더라도 자이니치는 공무원, 국철(현 JR)·우체국 직원 등으로 일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52년 일본 국적을 부정당하면서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해 내각 산하 법제국(법령의 심사·법제에 관한 조사 담당 기관)은 "공권력의 행사 또는 국가 의사를 형성하기 위한 계획에 참여하는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는 일본 국적이 필요하다. 다만 학술·기술적 사무 또는 기계적 노동, 정형적 직무는 제외한다"고 밝혔다. 따지고 보면 정부의 견해일 뿐이다. 어느 법률에도 공무원을 일본 국적 보유자로 한정한다는 내용이 명기돼 있지 않다.

‘파친코’의 솔로몬처럼 일부 자이니치는 흐름을 뒤집으려고 시도한다. 일본으로 귀화하지 않고 어려운 다툼을 자처하는 이유는 뭘까. 일본 국적을 갖지 않은 최초의 일본 변호사인 고(故) 김경득 씨의 항변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듯하다. 그는 1976년 사법시험 2차 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생으로 채용되려면 일본 국적이 필요했다. 귀화 요구에 김 씨는 이의를 신청했고, 1977년 대법원 결정에 따라 사법연수생이 됐다. 이 과정에서 제출한 탄원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가벼이 귀화 신청을 하는 것을, 저는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제가 변호사가 되려고 한 이유 그 자체를 상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귀화한 뒤 조선인 차별 해소를 위해 노력하고, 조선인을 위해 변호 활동을 하면 되지 않는가 한다 한들, 귀화한 제가 어떤 형태로 조선인 차별 해소에 관여할 수 있겠습니까. 또 조선인인 것을 원망하며 어린 마음에 상처받고 있는 동포의 자녀들에게 '조선인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강하게 살아라'하고 타이른다 한들, 그것이 귀화한 사람의 말이라면 도대체 무슨 효과가 있겠습니까."

문화스포츠팀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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