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들어가기 싫어...취미는 묘지 산책' 80세 괴짜 패션거장 [일본人사이드]

日 아방가르드 패션 디자이너 야마모토 요지
양장점하는 어머니 따라 패션 디자인 입문
오버사이즈·검정색 디자인으로 여성복 금기 깨

예술의 세계란 참 심오합니다. 유명한 거장 중에는 일반인이 범접할 수 없는 독특한 분들도 많이 계시는데요. 얼마 전에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일본 패션 거장과 진행한 인터뷰가 화제가 됐죠. 어느덧 80세가 됐는데 "일은 감옥"이라고 스스럼없이 말도 하고, 여전히 취미는 묘지 산책이라고 솔직히 말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사실 이분은 일본 아방가르드 패션을 이끄는 1세대 디자이너 브랜드, 'Y's'를 이끄는 야마모토 요지씨인데요. 거장도 출근이 싫고 일이 감옥 같다고 하니 위안이 되기도 하네요. 이번 주말은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로 어느덧 80세의 나이에 접어든 패션디자이너 야마모토 요지씨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야마모토씨는 1943년 도쿄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는 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하고, 양장점을 하는 어머니가 홀로 키웠다고 하죠. 어머니가 양장점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옷에 관심을 가졌다고 해요. 비슷한 예술 유전자가 전해진 것인지 어릴 적부터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고등학생 때는 우연히 디자이너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 다니는 미술학원에서 데생도 배웠다고 합니다.

조시비대학과 진행한 야마모토 요지 인터뷰.(사진출처=조시비대학 유튜브)

일단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일본 명문대 게이오대 법학부에 입학합니다. 대학 졸업 후의 장래를 고민해야 하는 시기 "나보다 공부 못하는 동기들은 부모님이 잘 사니 이미 인생을 보장받았다"며 다른 일을 꿈꾸게 됐다고 합니다. 그렇게 양장점하는 어머니를 돕겠다며 패션스쿨 개념인 문화복장학원에 입학합니다. 그곳에서 자신의 디자인을 콘테스트에 응모해 1등을 할 정도로 뛰어난 감각을 보여줬다고 해요.

자신감을 안고 그는 파리에 진출합니다. 당시 패션의 도시 파리에서는 고급 맞춤 의상인 오트쿠튀르에서 기성복인 프레타포르테 디자인으로 유행이 이행하고 있던 시기라고 해요. 일본에서 배우던 패션과는 달랐다고 합니다. 아무리 상품 활로를 뚫어도 문전박대를 당하고, 결국 일 년 만에 일본으로 귀국하고 다시 어머니의 가게에서 손님 옷 만들기를 도왔다고 합니다.

문화복장학원에 재학 중일 당시 잡지에 실린 야마모토 요지의 초기 디자인.(사진출처=KLD 홈페이지)

당시 맞춤옷을 만들며 느낀 것은 "여성이 입어야 하는 옷은 갑갑할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고 해요. 허리 등 라인을 강조하다 보면 옷이 틈 없이 꽉 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이에 1972년 야마모토씨는 야마모토의 영어 성씨의 앞 글자를 딴 Y를 살려 'Y's(와이즈)'라는 브랜드를 내걸고 갑갑한 옷보다는 다른 디자인에 집중하게 되죠. 처음 만든 여성복은 남성의 오버사이즈 코트를 본떠 만든 무채색 코트였다고 해요. 지금까지 화려했던 패션과 달리 밋밋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그리고 발수 원단으로 만든 우비 등 실용성에 맞춘 디자인을 선보입니다. 이것이 '여성스러움을 배제한 신감각의 옷'이라고 주목받으면서 화제가 되죠.

1981년 야마모토씨는 파리에 아예 가게를 열고 첫 패션쇼도 진행하게 됩니다. 당시 파리에서는 어깨는 패드를 넣어 어깨라인은 넓게 강조하고, 반면 허리는 가늘게 만드는 스타일이 주류였다고 하는데요, 야마모토씨는 검정색을 메인으로 한 오버사이즈 패션을 선보입니다. 당시 패션계에서는 검은 옷은 거의 금기처럼 여겨졌다고 하는데, 이를 앞세워 펼쳐 '흑의 충격'으로 알려지기까지 하죠. 극찬하는 언론도 있었으나 동양인의 이같은 실험에 "서양 패션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난하는 여론도 있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이를 '히로시마 시크'라고 완전히 비하하기도 했습니다.

야마모토 요지의 컬렉션.(사진출처=야마모토 요지 홈페이지)

하지만 관심으로 그는 인지도를 높이게 되죠. 1989년에는 영화 '도시와 모드의 비디오 노트'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도 발표하는데요. 독일의 유명 영화감독 빔 벤더스가 감독, 각본, 내레이션을 맡았다고 합니다. 거의 일본이 아니라 전세계에서 승승장구하게 되죠. 와이즈의 옷은 전 세계 중고 옷가게에서 수천개의 제품이 판매될 정도로 인기를 끌게 됩니다.

하지만 누구나 인생에 시련은 찾아오는 법이죠. 2009년 회사가 파산 신청을 밟게 됩니다. 해외 진출로 많은 예산을 투자하고 있는데, 2008년 리먼 쇼크가 찾아오면서 자금 운용이 어려운 상황이 됐었는데요. 당시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도 이 소식이 보도됐다고 합니다. 브랜드를 접을 것이냐 갈림길에 있던 차, 야마모토씨는 투자회사와 스폰서 계약을 맺는 것을 통해 파산을 막게 되는데요. 그는 "쓰러지지 않는 한, 눈이 안 보이지 않는 한, 옷은 계속 만들어간다"며 "브랜드를 지탱해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결정이었다"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야마모토 요지가 지난 3월 발표한 여성 컬렉션.(사진출처=야마모토 요지 홈페이지)

야마모토 요지는 어느덧 80세의 거장 디자이너가 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동은 계속하고 있죠. 올해만 해도 지난 3월 여성복 패션쇼, 6월에는 남성복 패션쇼를 열었습니다. 이번에도 시그니처인 무채색의 오버사이즈 재킷, 비대칭으로 덧대 흐르는 듯한 옷감 등으로 호평을 받았죠. 그리고 월스트리트 저널과도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거장의 하루는 특이할 것 같은데, 생각보다 유머러스하게 인터뷰를 받아쳤죠.

그는 "월요일 아침에는 어떻게 시작하느냐"는 기자 질문에 "나는 월요일 아침부터 피곤하다. 벌써 지쳐있다"며 "도움이 되는 것은 반려견과 집에서 2시간 거리 공동묘지에 나가 산책하는 일"이라고 답했는데요.

"아침에 일을 시작하는 게 얼마나 어렵느냐"라는 질문에는 "감옥에 있는 것 같다. 일은 나에게 의무"라고 짤막하게 답했습니다. 이후에도 "바빠 죽겠는데 사무실에 들어가기가 싫다", "하루에는 담배 두 갑을 피운다"라는 독특한 답변을 남겼는데요.

피팅 준비 중인 야마모토 요지.(사진출처=야마모토 요지 인스타그램)

사실 이는 야마모토가 '영원한 반항아'로 불리는 이유기도 합니다. "패션 디자이너가 되지 않았다면 범죄자가 됐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남겼을 정도인데요. 파리 패션계의 금기를 깬 반항부터 시작해 최근에는 패스트패션으로 생겨나는 기후 문제 등에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80세에도 패션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계속하는데요. 그는 "패션이라는 영어단어는 좋아하게 될 수가 없다. 매력이란 옷과 그것을 입는 사람이 만났을 때 생기는 것이다. 찬스나 우연으로 부르는 것이 맞다"라고도 했습니다. 역시 사람을 젊게 하는 것은 나이가 아니라 사고방식과 삶에 임하는 태도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기획취재부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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