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진기자
페인트 업계가 신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공통으로 점찍은 분야는 이차전지다. 도료 개발기술을 이차전지 소재 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데다, 전기차 시장 성장에 따른 이차전지 수요 확산을 눈여겨봤기 때문이다.
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노루페인트, 삼화페인트공업, 강남제비스코 등 주요 페인트 업체들이 이차전지 관련 연구에 나서고 있다. 도료 원료 대부분은 수입에 의존하는데, 그만큼 원자재 가격과 환율 변동이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안정적인 신사업에 목말라 있는 상태에서 이차전지 분야를 미래 먹거리로 택한 셈이다.
가장 먼저 성과를 낸 곳은 노루페인트다. 올해 초 이차전지 배터리 소재 13종과 수소에너지 소재 3종을 공개했다. 배터리용 소재를 선보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수년간 이차전지와 수소연료전지 연구개발에 투자해 왔다. 노루페인트는 올해 1분기 이차전지의 모듈과 셀 접착제 사업에서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
이들 제품은 이차전지 셀과 모듈, 팩에 적용할 수 있는 바인더(접착제), 몰딩제(마감재), 난연 우레탄폼 등으로 배터리 화재 위험을 줄여주는 기능성 제품이다. 연구 단계부터 이차전지 제조용으로만 쓰이도록 개발됐다. 이 회사가 전에 선보인 일반 접착제와 달리 각 용도에 맞게 최적의 비율로 원료를 배합해 기능성을 높인 게 특징이다.
삼화페인트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 2월 ‘이차전지용 전해액 첨가제 제조공법’ 특허를 취득했다. 기존 기술과 다른 새로운 염기성 촉매와 유기 용매를 사용해 반응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삼화페인트 측 설명이다. 5월에는 리튬이온 이차전지의 상온 및 고온 수명을 늘릴 수 있는 전해질 첨가제 개발에 성공했다.
강남제비스코는 자회사 강남화성을 통해 신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회사는 이차전지 파우치용 접착제를 개발한 데 이어 최근엔 이차전지 과열을 막는 방열 소재 등도 개발 중이다. 앞서 2022년에는 한국전기연구원과 '고용량 리튬 이차전지용 양극 바인더 기술'을 2032년까지 도입하는 계약도 체결했다.
한편 업계 1위 KCC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도료 사업 효율화에 집중하고 있다. 올해 들어 연구개발비도 큰 폭으로 올려 상반기에만 1012억원을 투자했다. 지난 한 해 연구개발비 1866억원과 비교할 때 이미 절반을 훌쩍 넘어섰다.
AI 연구와 관련한 투자 성과도 나오기 시작했다. KCC는 최근 국내 페인트 업계 최초로 수평면 도장 작업을 자동화한 자율주행 도장 로봇 ‘SMART CANVAS’를 개발했다. AI와 자율이동로봇(AMR) 기술을 결합해 도장 작업 자동화를 실현한 로봇이다. AI가 도장 공간을 인식한 뒤 사용자가 설정한 작업 조건에 따라 도장 작업을 스스로 수행하도록 개발됐다.
KCC는 AI 관련 연구개발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업계 최초로 AI 기반 ‘무도장 조색 시스템’을 개발해 특허를 등록하고 제품 양산에 적용했다. 주문받은 도료의 색상을 만들기 위해 실제 조색과 도장을 하지 않고도 조색에 필요한 색상을 예측할 수 있는 AI 기반 생산·조색 공정 플랫폼 덕분에 기존보다 약 72%의 시간을 단축할 수 있게 됐다.
업계 관계자는 “페인트는 국제유가가 한번 출렁이면 수익이 급감하는 등 사업 안정성이 떨어져 관련 기업들이 신사업 발굴에 적극적이다”며 “평소 신제품을 개발할 때 도료와 접목할 수 있는 다른 화학물질도 광범위하게 연구하고 있어 그동안 쌓아온 기술력이 도료 외 화학 사업으로 진출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