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노잼도시의 주범, '서울공화국'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재미없는 것 아닌가요?"

'노잼도시'와 관련해 시민들을 인터뷰한 결과 공통으로 나오는 비교기준이 있었다. 바로 재미의 척도가 서울과 얼마나 가까운지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단순히 도시의 크기, 경제비중, 인구 등 하드웨어적 측면 뿐만 아니라 문화 콘텐츠나 인프라도 서울이 압도적임을 다시금 느끼게 했다. 결국 지방 도시들은 서울과 가까울수록 덜 재미없는 곳이라고 자평했다. 주민들도 으레 "그래도 우리는 KTX로 서울 가기에 좋다"고 대답했다.

사는 곳이 재미없는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주민들은 "서울처럼 팝업스토어가 열리지도 않는다", "서울과 같은 대형 쇼핑몰이 없다"라며 모두 서울과의 차이점을 노잼의 이유로 들었다. 서울과 다른 것이 아예 노잼, 더 나아가서는 잘못된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셈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유행한 '노잼도시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의 시초인 대전의 한빛탑. (사진=허영한 기자)

노잼도시란 용어 자체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지자체)들의 거부감도 여기서 비롯된다. 사실 노잼도시는 2030 젊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으로 소비되고 있지만, 지자체들은 이 별명을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다. 아예 노잼도시라는 단어가 들어간 기획이라며 인터뷰를 거절하는 곳도 많았다.

지자체장들도 노잼도시 탈출에 절실하다. 광역시에서도 청년들이 탈출해 서울로 상경한다는 보도가 이어지면서 결국 너도나도 서울을 닮으려고 애쓴다. 지자체는 지역 캐릭터도 만들어보고 특구도 만들어보고 서울에서 잘나간다는 'OO단길'도 만들어 어떻게든 이식해보고 있다.

노잼도시 외에 인터넷상에서 밈으로 등장한 지방 도시들에 대한 별명들도 말이 좋아 별명이지 사실상 멸칭이나 다름없다. 무법천지를 누비는 액션 게임 GTA의 배경 산안드레아스에서 나온 '산안산드레아스', DC코믹스 세계관에서 조커가 사는 고담 시티를 모티브로 한 '고담대구' 등은 지역 도시들의 범죄율이 높다며 대놓고 지역을 차별하는 밈으로 쓰인다.

오로지 이런 멸칭이 붙지 않는 도시는 서울이다. '마계서울', '고담서울' 이런 용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자본과 권력이 집중된 '서울공화국'이란 용어가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다.

정치권은 이러한 서울 모방, 더 나아가서는 서울의 일원처럼 보이고 싶어하는 지방의 정서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여당은 또다시 경기도 김포의 서울 편입 특별법을 꺼내 들었다. 균형발전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어느새 '메가시티 서울'이 스리슬쩍 들어앉았다. 그 수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행정수도를 이전해 만든 세종시, 최근 불거졌던 국회의사당 세종시 이전 등의 이야기는 빛이 바랜 지 오래다.

결국 노잼도시를 탈피하기 위한 첫 번째 과제는 '서울공화국'이란 수도권 집중 문제의 구조적 해결과 인식 전환에 있다. 어느 나라나 수도 서울 같은 메가시티도 필요하지만, 인파를 피해 자연과 호흡할 수 있는 휴양지나 특색있는 소규모 도시들도 필요하다. 서울만이 꿀잼의 정답은 아니다.

기획취재부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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