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준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8·15 통일 독트린'을 발표하며 남북 대화를 제안했지만, 북한은 닷새째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담대한 구상' 발표 당시 곧바로 거부했던 것과 달리 북한의 반응이 늦어지는 점을 두고 '무시'인지 '숙고'인지 해석이 분분하다.
북한 공식 매체를 기준으로 20일 오전까지 통일 독트린에 대한 북한의 입장은 나오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새로운 대북정책 '담대한 구상' 발표 당시에는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나흘 만에 거부 입장을 담은 담화를 발표했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통일 독트린을 발표했다. '북한 주민'을 통일의 주체로 세우고 정보접근권 등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추진 과제들을 천명했다. 동시에 이런 방침이 김정은 정권에는 '흡수통일'로 해석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새롭게 제시한 통일 과제들의 상당수는 북한 주민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헌법에 기반한 원칙적 메시지라는 게 정부 입장이지만, 북한 당국에는 '통일 대한민국에 김정은 정권이 설 자리는 없다'는 메시지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실무 차원의 '대화협의체 설치' 제안도 호응해 나올 여지가 적다. '전제조건 없는 대화'라는 열린 입장을 보여줬지만, 윤 대통령이 인도적 현안으로 언급한 국군포로·납북자·억류자 문제는 북한이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특히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올해 초부터 '통일' 개념을 폐기하고 적대적 두 국가론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힌다. 선대의 업적까지 부정하며 체제의 존속 이유였던 통일을 스스로 부정한 데 대한 논리가 세워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김정은이 통일 개념을 폐기한 뒤 여러 후속 조치가 있었지만, 정작 주민에게 그 변화의 이유와 명분을 설명하는 절차가 전혀 없었다"며 "통일은 주체사상에 따른 과제이자 김일성의 유훈이고 남한과 달리 북한 주민에겐 삶의 목적과도 같은 큰 가치인데, 이를 부정할 논리가 없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조만간 북한이 (거부하는) 입장을 내겠지만, 김정은이 폐기를 명한 통일 개념을 다시 언급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의 반응에 대해서는 예단하지 않고 지켜보겠다"며 "이번 제안은 대통령이 직접 구체적으로, 또 전제조건 없는 대화라는 원칙을 분명히 밝힌 만큼 북한도 신중하게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