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지기자
예약을 하거나 1시간 이상 줄 서서 먹어야만 했던 호텔 애플 망고빙수(애망빙)가 올해는 예상보다 저조한 판매율을 보이고 있다. 서울 주요 호텔들은 7만~13만원대의 빙수를 선보이고 있는데, 가장 비싼 13만원짜리 빙수와 7만원대의 착한 가격(?)을 가진 호텔을 제외하고는 판매량이 증가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침체와 고물가 상황이 길어지고 있는 만큼 호텔에서 망고 빙수를 찾아 즐기려는 소비자들의 지갑이 꽉 닫힌 것으로 분석된다.
4일 호텔업계에 따르면 시그니엘 서울의 '시그니처 제주 애플 망고빙수'는 지난해 동기(6월 1일~7월 28일) 대비 20%가량 더 팔린 것으로 집계됐다. 이 빙수는 서울 시내 주요 호텔 가운데 가장 비싼 망고 빙수로 가격은 13만원이다. 지난해 가격은 12만7000원. 전년보다 2.4% 정도 비쌌지만, 빙수 판매량은 더 많았다.
이 빙수는 서울 도심을 조망할 수 있는 시그니엘 서울 79층 더 라운지에서 판매하고 있다. 제주산 애플망고와 애플망고 모양의 초콜릿, 망고 펄이 올라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빙수와 함께 곁들임으로 먹을 수 있는 수제 팥과 망고 셔벗 등도 함께 제공된다. 호텔 관계자는 "예약을 따로 받고 있지 않다"며 "주말이나 휴가 시즌인 요즘에는 수요가 꽤 많아 1시간 내외로 웨이팅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다즈 서울 강남의 '망고빙수' 도 같은 기간 30% 매출이 더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안다즈 서울 강남 호텔 2층 조각보 바이츠 앤 와인에서 판매하며 가격은 7만5000원이다. 시그니엘의 반값 수준이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탓에 호텔 빙수를 즐기는 소비자들 사이에 가성비 있는 '착한 빙수'로 통한다.
다만 같은 기간 다른 호텔들의 빙수 판매량은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포시즌스 호텔의' 제주 애플망고 파블로바'는 지난해와 비슷한 판매량을 보였고,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의 '제주 애플망고 빙수', 웨스틴조선호텔의 '애플망고 빙수'도 마찬가지였다. 서울드래곤시티 '망고빙수'와 롯데호텔 서울의 '제주애플망고빙수'는 지난해보다 판매량이 소폭 감소한 것으로 추산됐다. 사용할 수 있는 망고 수량이 정해져 있어 사전 예약을 하지 않으면 망고빙수를 구경할 수도 없었지만, 지금은 예약 없이도 방문할 수 있다. 또 다른 호텔 관계자는 "비싼 디저트로 인식되면서 예전만큼 줄 서서 먹는 분위기는 아니다"며 "다만 날씨가 더 더워지고 있어 매출이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망고 빙수는 호텔업계를 대표하는 메뉴다. 2007년 제주신라호텔에서 제주산 애플망고를 넣어 처음 판매한 것이 시작인데, 고급스러운 맛으로 큰 인기를 얻자 신라호텔 서울을 비롯해 주요 호텔들도 잇달아 판매를 시작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덕분에 망고빙수는 빙수계의 '에르메스, 샤넬' 등으로 불리며 작은 사치(스몰럭셔리)를 대변해왔다.
하지만 물가 상승으로 가격이 오름세를 보이면서 중간 가격대의 빙수들 중심으로 판매량이 줄어든 것으로 분석된다. 소비가 줄어든 상황에서 10만원대에 육박하는 빙수에 돈을 쓰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낀 것이다. 빙수 가격에는 직원들의 인건비, 제주 애플망고 가격, 서비스 비용 등이 반영되는데 인건비 상승과 망고 가격 오름세가 반영되면서 올해는 10만원을 넘긴 호텔이 세 곳이나 됐다.
MZ(밀레니얼+Z세대) 중심으로 과시 소비 대신 실속형 소비로 전환된 것도 호텔 빙수 소비가 줄어든 이유다. 과거 젊은 소비자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호텔에서 즐기는 망고 빙수 게시물을 올리는 것을 하나의 트렌드처럼 여겼다. 요즘에는 SNS에 망고빙수를 검색하면 호텔 망고빙수보다 호텔 빙수만큼 질 좋은 빙수 제품을 파는 카페나 음식점에 대한 공유 게시물이 더 먼저 확인된다. 프랜차이즈 카페와 제과점인 투썸플레이스와 파리바게뜨는 실제로 올해 판매량이 큰 폭으로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투썸플레이스의 애플망고빙수는 최근 두 달 동안 약 30만잔이 판매돼 지난해 판매량의 120%가량을 채웠다. 파리바게뜨는 지난달 빙수 매출이 전년 대비 약 50% 신장한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