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은 이미 화나있다…AI 적용방식 바꿔야”[뺑뺑이 AI콜센터]⑥

‘콜센터 메카’ 대전서 8~10년 차 상담사 3명 만나보니
“AI 상담 피해 영업점 전화거는 고령층 고객도…AI 뺑뺑이 아우성”
“적용방식 바꿔야…상담원 상담에 도움되도록 AI 개편해야”

편집자주“(AI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누구나 한 번쯤은 이용할 일이 있는 콜센터, 언제나 상담원이 친절하게 전화를 받아 문제를 해결해 주던 금융회사의 콜센터가 어느샌가 금융소비자에게 불편한 곳으로 변해버렸습니다. 미완(未完)의 ‘인공지능(AI) 상담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오히려 금융소비자가 체감하는 문제해결 절차와 소요 시간은 지연되고만 있습니다. 은행·카드사 등 금융권이 콜센터의 인간 상담원을 AI 상담 서비스로 대체하면서 나타난 아이러니입니다. 이에 아시아경제는 금융소비자, 노동자 등 다양한 시선 아래서 금융회사 콜센터의 속사정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이미 인공지능(AI) 챗봇·음성봇에서 속칭 ‘뺑뺑이’를 돌다가 화난 고객을 상대하다 보면 숨소리를 내는 것도 조심스럽죠.”

아시아경제가 최근 대전시 서구 비전스퀘어에서 만난 금융회사 콜센터 상담원 현진아씨(43·여), 반순금씨(50·여), 권영우씨(49)는 AI 상담 서비스가 도입된 이후 현장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을 이같이 말했다. 이날 만난 이들은 근무경력만 8~10년에 이르는 ‘베테랑 상담원’들이다.

금융회사 콜센터 현장에서는 AI 상담 서비스가 본격화되면서 예측과 달리 인간 상담원들의 업무가 되레 과도해졌단 평가가 나오고 있다. 단순한 문의는 AI로 처리토록 하겠단 것이지만 현실에선 늘어난 절차와 격앙된 감정에 고객과 노동자 모두 불만과 피로도가 누적되는 결과를 낳고 있어서다.

콜센터 현장에선 AI 상담 서비스의 고도화·확대는 피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는 데 공감하면서도, 아직 미완의 기술인 데다 한계도 뚜렷한 만큼 업무 과정에서 적용하는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대전 국민은행 콜센터 전경. 사진=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든든한콜센터지부 제공

고객 응대는 AI부터…지연되면 고객은 ‘못 참아’ 상담사는 ‘쩔쩔’

상담원들이 겪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고객과의 관계다. 콜센터 이용 시 금융회사들이 챗봇·음성봇 등 AI 상담 서비스로의 연결을 유도하고 있고, 결과적으로 고객들은 문제해결을 위해 추가적인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8년 차 하나은행 콜센터 상담사인 현씨는 “요즘은 AI가 일단 전화를 받고, AI가 못 알아듣거나 할 수 없는 업무는 상담원을 연결해주는 방식”이라고 했다.

국내 카드사의 경우 고객센터에 전화하더라도 인간 상담원을 바로 연결할 수 없는 구조다. 예를 들어 보이는 자동응답전화(ARS)를 거치거나 AI 챗봇, AI 상담원(음성봇) 등을 거쳐야 연결이 가능하다. 은행 콜센터 역시 AI 상담원과 먼저 통화를 한 뒤 원하면 인간 상담원을 연결받을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중·장년층을 비롯해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은 고객들은 상담원 연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거나, 원하는 업무를 제때 처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인간 상담원 연결이 어려워지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는 콜센터 상담원 연결 방법을 묻는 웃지 못할 게시물도 상당하다. 이 같은 상황은 상담원에게도 고객들에게도 모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현씨는 "어르신들은 상담원들과 연결해서 상담하고 싶은데, 왜 이렇게 연결이 안 되냐는 불만이 많이 들어온다"며 "이 때문에 직원이 바로 연결될 것으로 기대되는 일반 영업점 번호로 전화하는 분들도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반 영업점 전화번호는 내선 번호를 알아야 지점 직원과 통화할 수 있다.

특히 콜센터로 걸려 오는 전화 중 다수는 조회 등 단순문의로 빨리 해결할 수 있는 케이스도 많은데, AI가 고객의 문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시간이 되레 오래 소요되는 경우도 있다. 10년 넘게 KB국민은행 콜센터에서 상담원으로 근무한 반씨는 “고객들은 ‘(AI가) 말귀도 못 알아듣는데 뺑뺑이를 시킨다’라고 아우성”이라며 “(AI 상담 서비스 이전과 비교해) 고객의 성향도 안 좋아졌다”고 귀띔했다.

국민은행 콜센터 상담원이 일하는 모습. 사진=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든든한콜센터지부 제공

AI가 대체할 수 없는 ‘감정’…불만콜로 흑화하기도

AI 상담원이 고객들의 요구와 감정까지 완벽히 이해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도 상당히 많다는 게 이날 만난 현업 상담원들의 전언이다. 인간 대 인간으로 감정을 소통하면 오히려 풀릴 수 있는 민원도 AI 상담원이 연결되면서 '불만 콜(call)'로 변하는 경우가 상당수 있다는 것이다.

10년 차 KB국민카드 상담원인 권씨는 "AI가 단순 업무는 완벽히 처리한다고 해도, 고객이 요구하는 것에 대해 감정을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느냐가 문제"라고 말했다. 현씨는 "고객의 마음을 보듬어주면서 해결하면 빨라질 수 있는 업무도 많은데, AI 상담원은 그걸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방해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상담원들은 AI가 고도화되더라도 사람을 대체할 수 없는 고유의 역할이 있다고 단언했다. 채권 회수 같은 업무는 AI로는 대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권씨는 매달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리볼빙 이자로 고통받던 고객에게 장기 카드론 대안을 제시해 매달 갚아야 할 돈을 줄여주고,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게 만들어준 경험도 있다고 한다. 이 같은 일은 고객이 묻는 말에만 답변이 가능한 AI는 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는 “AI가 안정화된다고 해도, 전문적인 상담은 필요하다”며 “상담원들이 고객의 상황을 파악하고 대안을 제시해주고 조언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물론 현업 인간 상담원들도 AI의 고도화와 확대는 피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는 점에 대해선 인정한다. 다만 지금처럼 금융소비자들이 불편을 겪는 방식이 아닌, 실질적으로 콜센터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예컨대 현재 일부 금융사 콜센터의 경우 상담원과 고객의 대화를 텍스트화하는 AI가 적용돼 있으나, 이조차도 용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또 상담을 보조하는 봇(bot)이 있더라도 고도화되지 않아 활용하는 데 한계가 적지 않다. 반씨는 “상담원들에게는 AI가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아직도 상품 목록을 목차에서 일일이 찾아서 상담한다”며 “상담원들이 좋은 상담을 할 수 있는 쪽으로 AI가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고령층 등 취약계층을 위한 대안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씨는 “고령자의 경우에는 '홈페이지 우측 상단에 뭘 눌러야 한다'까지 세분화해서 설명을 해줘야 하는데 AI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고령화 사회가 될수록 상담사가 더욱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제금융부 부애리 기자 aeri345@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