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슬기나기자
"도널드 트럼프는 내가 강력히 지지하는 사람이다."(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
"트럼프를 백악관으로 돌려보내자."(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 이틀 차인 16일(현지시간)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경선 라이벌이자 앙숙으로 꼽혀온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주지사 등도 연단 위에 올라 그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표명했다. 앞서 유세 중 피격당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전날에 이어 이날도 전당대회 후반에 귀에 붕대를 붙인 채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일부 당원들도 귀에 붕대를 붙인 패션으로 눈길을 끌었다.
CNN 생중계에 따르면 이틀 차인 이날 위스콘신주 밀워키 파이서브 포럼에서 진행된 공화당 전당대회는 '미국을 다시 한번 안전하게(Make America Safe Once Again)'라는 주제로 범죄, 이민정책 등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황금시간대 연사 라인업에 트럼프 전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해온 과거 경쟁자들이 대거 포함됐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전당대회 현장에 입장한 이후인 오후 8시30분께 연단 위에 오른 헤일리 전 대사는 먼저 "트럼프 전 대통령이 통합을 위해 연설해달라고 요청했다"면서 "먼저 한 가지 분명히 밝혀두겠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내가 강력히 지지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헤일리 전 대사는 자신이 그랬듯 모든 미국인이 트럼프 전 대통령에 항상 동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했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투표하기 위해 100% 동의할 필요는 없다"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 항상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것에 동의했다. 우리는 미국을 강하게, 안전하게 유지하는 데 동의한다. 민주당이 너무 좌측으로 쏠려 우리의 자유를 위험하게 만들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고 말했다.
경선 마지막까지 버텼던 헤일리 전 대사의 경우 트럼프 측에 '미운털'로 찍히며 당초 전당대회에 초대조차 받지 못했으나, 지난 13일 피격 사건 직후 연사로 포함된 케이스다. 이로 인해 헤일리 전 대사의 등장 초반 현장에서는 환호와 야유가 함께 확인됐다고 현지 언론들은 짚었다. 공화당으로선 피격 사건을 계기로 당내 통합과 결집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 헤일리 전 대사를 연사로 추가한 것이다.
그는 민주당 소속인 조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 사퇴론을 확산시킨 TV토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헤일리 전 대사는 "토론을 본 후 우리는 모두 그것이 사실임을 알게 됐다"면서 "만약 바이든 대통령이 4년 더 일하거나, 카멀라 해리스가 단 하루라도 더 남아있게 된다면 우리나라는 훨씬 더 나빠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바이든 정부하에서 국경안보를 미국인들이 직면한 최대 위협으로 꼽으면서 "불법이주민들이 매일 수천명씩 우리나라에 들어온다. 그들이 누군지,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할 것인지 전혀 모른다"고 비판했다.
이어 연단에 선 디샌티스 주지사 역시 "바이든 대통령을 그의 지하실로 돌려보내고, 트럼프 전 대통령을 백악관으로 돌려보내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디샌티스 주지사는 1989년 개봉한 미국의 코미디 영화 '위켄드 엣 버니즈'를 언급하면서 바이든 대통령의 고령 논란을 공격했다. 이 영화는 두 주인공이 죽은 상사의 시신을 주말동안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고령인 바이든 대통령이 직무 수행을 하지 못할 것이란 주장이다.
디샌티스 주지사는 "우리의 적들은 그들의 기획을 오전 10시에서 오후 4시로 제한하지 않는다"면서 "우리에게는 24시간, 일주일 7일 내내 이끌 수 있는 최고사령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당 발언 역시 바이든 대통령이 저녁 8시 이후 행사를 축소하고 수면 시간을 늘려야 한다고 했다는 언론 보도를 겨냥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어 "트럼프가 우리의 총사령관이었을 때 우리나라는 존경을 받았다"면서 "시민으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현 대통령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에 위기감을 느낀다"고 주장했다.
이들에 앞서 경선 라이벌 중 이날 저녁 가장 먼저 무대 위에 오른 것은 기업가 출신 비벡 라마스와미였다. 그는 경선 초기에 하차한 후 트럼프 전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해온 인물로, 한때 부통령 후보로도 언급됐었다. 라마스와미는 법치주의의 중요성과 자신이 미국에 합법적으로 이민 온 자의 자녀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첫날 남부 국경을 봉쇄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합법적 이민자와 불법 이민자를 구분하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장해온 불법 이민에 대한 강경 정책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인 J.D밴스는 이날 오후 8시께 몇분의 시차를 두고 전당대회 현장에 각각 모습을 드러냈다. 밴스에 이어 등장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오른쪽 귀에 붕대를 붙인 채 전날보다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환호하는 당원들을 향해 주먹을 들어 올리고 박수를 쳤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착석하자 전당대회 현장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국경안보를 훼손하고 위험인물들의 미국 입국을 허용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내용의 영상이 공개됐다. 영상 속 내레이션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우리 국경을 안전하게 지켰고, 우리 가족을 안전하게 지켰다"며 "다시 그렇게 할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어 2016년 경선 경쟁자였던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이 연단에 올라서 "신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축복하시길"이라고 외치며 연설에 나섰고, 트럼프 전 대통령은 신중히 듣는 모습을 보였다. 헤일리 전 대사와 디샌티스 주지사의 연설은 그 직후 이뤄졌다.
CNN방송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밴스 부통령 후보와 함께 전당대회 마지막날까지 매일 밤 현장에 참석할 것이라고 전했다. 밴스 부통령 후보는 다음날 공식 연설을 위해 연단에 올라선다. 트럼프 전 대통령 역시 마지막날인 18일 밤 수락 연설을 진행한다. 두 사람은 전당대회를 마치고 이번 주말 미시간주에서 첫 공동 유세에 나설 예정이다.
이날 현장에서는 공화당원들 사이에서 귀에 네모난 모양의 흰 붕대를 붙인 이들도 눈에 띄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패션으로 표한 셈이다. 애리조나주 템피 출신의 조 네글리아는 일간 가디언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총에 맞는 것을 봤다. 나라를 위해 거의 목숨을 바쳤다고 생각해 존경받을 만하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래서 패션 트렌드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