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진기자
우주 환경에 놓인 인간의 신체가 불과 사흘 만에 빠르게 변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우주 공간에서만큼은 노화 속도가 한층 늦어졌으나 골밀도와 근력이 떨어지고 반응 속도가 저하하는 등 신체가 크게 달라지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민간 주도의 우주항공 시대가 열린 가운데 관련 연구는 지속해서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미국 코넬대 의대 중심의 국제 공동 프로젝트 'SOMA(Space Omics and Medical Atlas)' 연구진은 우주 관광에 나선 민간인과 국제우주정거장에 머물렀던 비행사들을 대상으로 우주 환경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국제 학술지 네이처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공개했다.
SOMA는 우주 환경에서 생명체의 생리학적 변화를 분석하고 데이터화하는 프로젝트다. 연구진은 스페이스X가 주도한 민간인 우주 프로젝트인 '인스피레이션4'를 통해 우주를 관광한 민간 우주인 4명과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6개월~1년 체류한 우주 비행사 64명의 의료 데이터를 분석했다. 지금까지 우주인의 건강을 분석한 연구 중 가장 규모가 큰 프로젝트다.
스페이스X는 2021년 세계 최초로 민간인 4명을 유인 우주선 크루 드래건에 태워 고도 585㎞로 보냈다. 이들은 3일간 우주에서 머물다가 지구로 귀환했다. 연구진은 4명의 혈액과 대소변, 타액 샘플을 확보해 신체 변화를 분석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연구결과에 대해 "우주에서의 사흘은 민간 우주인 4명의 신체와 정신을 바꾸는 데 충분했다"고 평가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노화 속도를 담당하는 유전자로 알려진 '텔로미어'가 우주 공간에서 길어졌다는 점이다. 텔로미어는 유전자의 손상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텔로미어가 길수록 세포가 천천히 늙는다는 얘기다. 민간인 4명 모두 우주에서 텔로미어가 길어졌다. 하지만 지구 귀환 후 이전 길이로 돌아왔고 일부는 오히려 텔로미어가 짧아져 노화 속도가 빨라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진은 방사선에 의해 망가진 텔로미어를 고치는 과정에서 오히려 길이가 더 길어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우주에서는 신장 내 분자 변화로 인해 신장 결석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인스피레이션4로 우주를 관광한 민간인 4명은 우주 공간에 불과 3일만 머물렀으나 이후 장기 체류할 경우 신장 결석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만큼 이를 치료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연구진의 생각이다. 골밀도가 저하되고 근력도 떨어졌으며 면역 시스템이 일시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또 우주인들은 우주에 머무는 동안 반응 속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 우주인과 우주 비행사들은 우주에서의 인지력 측정을 위해 아이패드로 여러 실험에 참여했다. 화면에 갑작스럽게 스톱워치를 띄워 이를 누르는 시간을 측정한 것인데, 지상에서 할 때보다 속도가 늦어졌다. NYT는 이를 두고 "일시적인 인지 저하"라고 표현했다. 관련한 또 다른 연구에서는 시각적 검색 능력이나 작업 기억력이 떨어진다는 결과도 나왔다.
이처럼 신체적 변화를 겪은 민간 우주인 4인은 지구에 돌아와 일상에서 회복 과정을 거쳤다. 지구에서의 우주인 신체는 우주로 가기 전 상태로 대부분 돌아왔다. 회복 속도는 여성이 좀 더 빠르다. 인스피레이션4에 참여한 여성 우주인 2명이 남성 우주인 2명보다 더 빠르게 이전의 건강 상태로 돌아왔다. 연구진은 여성이 출산 능력과 변화에 좀 더 유연하게 견디는 능력으로 우주여행이라는 스트레스 상황에 잘 견뎌냈기 때문으로 해석했다.
민간 우주 관광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커지는 상황에서 이러한 연구도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에임스 연구센터의 아프신 베헤슈티 연구원은 "이번 연구로 신체 변화의 연관성을 서서히 찾을 수 있게 됐다"며 "퍼즐 조각들이 전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이를 통해 대응 목표를 더 쉽게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