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바나나를 금지합니다…직장인들 '애착 화분'으로 인기[베이징 다이어리]

중국인들의 말장난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같은 발음을 이용해 미신이나 유행을 만들어 끼리끼리 즐기는 문화는 대륙에서 오랜 세월 성행하고 있다. 이를 해음(諧音) 문화라고도 한다. 중국 사람들이 복(福)자를 뒤집어 문에 붙이는 것도, 차 뒷범퍼에 도마뱀 모양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 것도 여기서 비롯됐다.

최근 제법 화제가 됐던 하나의 말장난은 바로 '녹색 바나나 금지'. 유희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사업 아이템이 돼 누군가에게 제법 쏠쏠한 수입을 가져다준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청년층의 사회적 불안에 착안해 녹색 바나나 사업을 시작한 1990년대생 린원하이씨. (사진 출처= 바이두)

녹색 바나나가 점차 노랗게 후숙되고 있는 과정을 네티즌들이 공유했다. (사진 출처= 웨이보)

익지 않아 떫은맛이 나는 녹색 바나나는 시장에서 유통되는 일이 거의 없다. 이 과일이 최근 중국에서는 작은 화분이 돼 전국 직장인들의 책상 위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대신 이 바나나 송이에는 작은 카드에 이렇게 적혀있다. '녹색 바나나 금지(禁止蕉綠)'. 귀찮은 후숙 과정을 거쳐야 하는 이 녹색 바나나의 가격은 5kg에 69.9위안(약 1만3290원)으로 잘 익은 노란 바나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

녹색 바나나가 직장인들의 애착 화분이 된 사연은 이렇다. '녹색 바나나'를 의미하는 중국어 병음 '쟈오뤼(蕉綠)'는 '불안(焦慮)'과 발음이 같다. 녹색 바나나를 금지한다는 것은 고로 근심, 불안, 걱정을 금지한다는 의미가 된다. 녹색 바나나가 후숙 과정에서 노랗게 변하는 걸 바라보고, 이걸 하나하나 따먹으며 사회 초년생들은 회사에서 느끼는 초조함과 불안함을 해소한다. 어떤 사람은 바나나 하나하나에 잊고 싶은 걱정거리를 펜으로 적어두기도 했다. 한 네티즌은 "바나나가 녹색에서 노란색으로 변하는 것을 '갓 대학을 졸업한 나의 인생이 노련한 직장인으로 변해가는 과정'으로 여긴다"고 진단했다.

다니던 공장을 관둔 뒤 이 사업을 시작해 한 달에 200만위안을 벌게 된 1990년대생 린원하이씨는 하루 주문량이 1만건에 달하며, 이제까지 300만송이 이상을 팔았다고 인터뷰했다. 현지 언론은 "(린 씨가) 빠르게 돌아가는 일과 생활 속에서 큰 압박감을 느끼고 있는 현대의 젊은 층들이 불안을 해소할 방법이 시급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라고 소개했다.

린 씨의 성공 스토리는 다른 의미에서 젊은 층에 불안을 해소하는 계기로 인식되는 듯하다. 초유의 실업난(5월, 16~24세 14.7%)과 매년 1200만명을 웃도는 대학 졸업생이 쏟아져나오는 중국에서, 괜찮은 아이디어와 실행력이 있다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교훈을 준 셈이다.

얼마 전 시진핑 국가주석이 직접 나서 '양질의 완전고용'을 강조하며, 일자리의 수요와 공급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한 중국. 금지된 녹색 바나나의 치유 효과가 길지는 않겠지만, 어떻게든 상황을 긍정해보려는 노력은 눈여겨볼 만하다.

국제부 베이징=김현정 특파원 alphag@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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