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 진술' 부담됐나…김계환 사령관 대질조사 거부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조사 과정에서의 'VIP 격노설'을 둘러싸고 진술이 서로 엇갈렸던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과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의 대질조사가 김 사령관 측의 거부로 끝내 무산됐다.

채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을 수사 중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21일 오후 "공수처 수사팀은 양측에 대한 대질을 시도했으나 김 사령관 측의 거부로 진행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21일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수사외압 의혹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경기 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공수처는 "김 사령관 측은 '해병대가 회복할 수 없는 상태에서 해병대를 책임지고 있는 최고지휘관과 부하가 대면해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해병대에 더 큰 상처를 줘서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는데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대질을 거부한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공수처 수사4부(부장검사 이대환)는 이날 오전 김 사령관을 직권남용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재소환해 조사했다. 오후에는 박 전 단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했다. 수사팀이 두 사람을 동시에 소환하면서 대질조사를 통해 해병대의 채 상병 사건 보고를 받고 윤석열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의혹의 진위를 가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통상 대질조사는 양측의 동의 하에 진행된다. 하나의 사실을 두고 서로 다른 진술을 하는 두 사람이 검사나 수사관 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다 보면 거짓을 얘기하는 쪽의 말이 앞뒤가 안 맞는 경우가 생기거나, 앞서 한 거짓말 때문에 또 다른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져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하는 쪽이 곤혹해질 수 있다.

이날 김 사령관은 '상관과 부하가 시시비비를 가리는 모습이 해병대에 상처를 줄 수 있다'는 등 이유를 댔지만 대질조사 거부 사실은 향후 수사와 재판에서 김 사령관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에 대한 이날 조사는 따로 진행됐고, 오후 9시를 넘겨 마무리됐다. 이후 조서 열람을 마친 뒤 박 전 단장은 오후 10시30분경, 김 사령관은 오후 11시30분경 각각 청사를 빠져나왔다.

조사를 마치고 나온 김 사령관은 이날 출석 때와 마찬가지로 '대질신문을 하는 게 오히려 해병대에 이롭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대통령 격노설이 거짓이라고 보느냐'는 등 취재진의 질문에 일절 대답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차례로 귀가했다.

김 사령관은 지난해 7~8월 채상병 순직 사건 초동 조사를 벌이던 박 전 단장에게 윗선의 외압이 가해지는 과정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박 전 단장이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등 간부 8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이첩하려 했는데 이를 보류시키고 혐의자를 2명으로 줄이는 과정에 대통령실 등 윗선이 개입했다는 게 이번 의혹의 핵심이다.

박 전 단장이 지난해 7월 30일 해병대 1사단장 등 간부 8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한 수사 결과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한 다음 날 김 사령관이 돌연 언론 브리핑 취소를 통보하며 부대 복귀를 지시했고, 이어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박 전 단장에게 전화해 ‘혐의자와 혐의 내용을 다 빼라’고 했다는 것이다.

박 전 단장은 이 전 장관의 지시로 브리핑이 취소된 후 김 사령관이 "국방부에서 경찰 인계 서류에 혐의자와 혐의 내용을 빼라고 한다"면서 "오전 대통령실 VIP 주재 회의에서 1사단 수사 결과에 대한 언급이 있었고 VIP가 격노하면서 (이종섭 전) 장관과 통화한 후 이렇게 됐다"고 전했다는 입장이다.

반면 김 사령관은 군검찰 조사 당시 이 같은 의혹을 전면 부인하며 "박 전 단장이 항명 사건을 벗어나기 위해 혼자 지어내고 있는 얘기로 보인다"며 "VIP 언급 자체를 한 사실이 없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날 윤 대통령은 '순직 해병 진상규명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법'(채상병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사회부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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