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기자
미투’(MeToo) 운동에 참여한 프랑스 여배우와 여성계가 14일(현지시간) 포괄적인 성폭력 방지법을 제정하라고 프랑스 정부에 촉구했다. 여기에는 이자벨 아자니와 쥘리에트 비노슈, 쥐디트 고드레슈 등 프랑스의 유명 여배우들이 함께 목소리를 냈다.
연합뉴스는 이들 147명이 프랑스 일간 르몽드에 게재한 공동 기고문을 보도했다. 이들은 "지난 7년 동안 우리는 우리 자신과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모든 남녀, 아이를 위해 미투 폭로를 해왔지만 과연 누가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라고 한탄했다.
이어 "피해자들의 용기에도 처벌되지 않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며 "2022년 성폭력 고소 사건의 불기소 처분율이 무려 94%에 달한다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기고문에 이름을 올린 안 세실 마일페 여성재단 회장은 라디오 방송에서 “성폭력 피해자인 여성이 수사와 재판 전 과정에서 제대로 고려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프랑스 정부가 형법상 강간죄에 '동의' 개념을 명시하는 것만으로는 이 분야에서 프랑스의 끔찍한 후진성을 보완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번 기고문은 이날 개막한 제77회 칸 영화제를 계기로 영화계의 성폭력 문제를 다시 한번 공론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계 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형법상 강간죄에 '동의' 개념을 명시하겠다고 약속했다. 여성계는 당사자의 명확한 동의가 없는 경우도 강간(비동의 강간죄)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고문에 서명한 인사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포괄적 성폭력방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 법을 통해 '강간'과 '동의', '근친상간'의 개념을 명확히 정의하고 연쇄 성폭행범의 경우 모든 사건에서 재판받게 하며 성폭행 피해자에 대한 보호 명령을 확대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또 전문 수사 조직 구성, 피해자 트라우마 무료 치료 등도 요구했다.
이번 칸 영화제에선 프랑스 영화계 ‘미투(나도 당했다)’를 다룬 다큐멘터리 ‘모이 아우시(Moi Aussi)’가 개봉될 예정이라, 이 작품에서 공개될 '미투' 명단에서 관심이 모이고 있다. ‘모이 아우시’는 프랑스어로 ‘미투’를 뜻한다.
이 작품을 만든 프랑스 배우 쥐디트 고드레슈는 30여년 전 당시 43세였던 영화감독 자크 두아용이 15세였던 자신에게 그와 함께 성관계 장면을 마흔다섯 테이크에 걸쳐 촬영할 것을 고집했다며 "그 더러운 두 손을 내 15살짜리 가슴에 갖다 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왜 우리가 이토록 사랑하고 우리를 하나로 만드는 이 예술이 젊은 여성에 대한 불법 인신매매를 덮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느냐"고 되물으며 "우리는 더 이상 강간죄로 고발당한 남성들이 영화계를 지배하지 않게 하기로 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드레슈는 1998년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함께 출연한 영화 '아이언 마스크' 등으로 이름을 알렸으며 이후 3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한 베테랑 여배우다.
한편, 프랑스 국민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외에게 성추행·성희롱 피해를 당했다는 여성의 폭로도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