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연금개혁,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이번에는 다를까 했더니, 이번에도 역시나였다. 17년째 해법을 찾지 못했던 연금개혁은, 21대 국회에서도 개혁 실패 직전에 놓여 있다. 국민의힘 소속인 주호영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장은 "사실상 21대 활동을 종료하게 되는 상황이 왔다"고 말했다. 여야가 걸어닫은 대화의 문을 열고 다시 머리를 맞대지 않는 이상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조금이나마 확보하려는 개혁 노력은 좌초 위기에 놓인다.

구조 자체를 바꾸지 않는 한 연금개혁은 결국 월급을 더 쪼개 국민연금에 넣도록 강제하든지, 노후에 받는 연금 혜택을 줄이는 길 외에는 없다. 누군가에게 희생을 강요해야 하는 이 일이 어떻게 쉬운 일일 수 있을까. 그럼에도 총선이 끝났을 때, 한달 보름 남짓 남은 국회에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연금개혁이었다. 최악의 국회라고 불렸던 21대 국회였지만, 연금개혁이 이뤄지면 유종의 미는 거둘 수 있다고 판단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연금특위도 총선 일정을 피해 총선 후 잔여 국회 임기 동안 연금개혁 동력을 얻어보겠다고 수십억 원의 혈세를 들여 공론화 조사를 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했다. 민간자문위원회 1, 2기에 걸쳐 구체적인 개혁안을 논의했고, 정부도 '제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에서 결론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한 검토 작업을 해뒀다.

정치 상황도 나쁘지 않았다. 주 위원장은 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원내대표 등을 맡으면서도 특위 위원장은 놓지 않을 정도로 개혁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여당 간사인 유경준 의원은 한국개발연구원(KDI) 출신으로 연금제도에 대한 조예가 깊고, 김성주 민주당 의원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등을 맡는 등 현역 정치인 가운데 연금에 가장 정통하다. 일부에서 걱정했던 것처럼 양당 간사가 모두 낙선한 것도 악재로 볼 것만도 아니었다. 국회를 떠나며 마지막으로 정치적 업적을 남기고 싶어 하는 소명의식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3대 개혁 과제로 연금개혁을 꺼내 들었고, 야당 역시 연금개혁 논의에 호응하는 상황이었다. 이보다 나은 상황이 과연 있을까.

하지만 합의 타결 발표는 없었다. 여야는 보험료율(내는 돈)을 현재 9%에서 13%로 올리는 대신 소득대체율(받는 돈)을 43%로 할 것인지, 45%로 할 것인지를 두고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어떤 합의를 했더라도 연금고갈 시점은 최소 8~9년이 늘었을 것이고, 누적적자 규모도 2766조원(소득대체율 45%)에서 4318조원(소득대체율 43%)이 줄었을 터였다. 하지만 이 2%포인트의 차이로 인해 합의는 무산됐고, 공은 다시 22대 국회로 넘어가게 될 상황이다.

22대 국회로 넘어간다는 것은 단순히 개혁 일정이 몇개월 정도 지체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국회는 다시 연금특위를 구성해야 하는데, 상임위원회 등을 두고서 이미 영토전쟁을 벌이고 있는 국회 상황이 안정된 뒤라야 고민해볼 수 있는 일이다. 늦가을에나 연금특위가 구성돼도 새롭게 바뀐 의원들을 상대로 연금제도의 각종 개념에 대한 학습이 이뤄져야 한다. 어느 정도 개념이 잡힐 때쯤엔 선거의 해가 시작된다. 2026년 지방선거, 2027년 대통령선거, 2028년 다시 총선. 이 시점이 되면 연금개혁의 숙제는 더 커지고, 대가 또한 커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개혁이 안 되면 연금개혁이 다시 이만큼 접점을 좁힐 수 있는 때가 다시 찾아오기는 어렵다. 개혁이 늦어질수록 연금고갈에 대한 경고는 커질 것이고, 재정 부담은 늘 것이며, 연금이든 노후생활이든 국민들의 신뢰는 약해질 것이다. 여야에 간곡히 호소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제발 다시 협상 무대에 서라!"

정치부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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