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석기자
22대 총선 표심을 분석한 결과 선거구 획정 방식에 따라 선거 승패가 달라질 수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선거구 획정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국회의원들이 선거구 획정에 영향을 미칠 수 없도록 외부기구에 맡기는 식으로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29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2대 총선 당시 주요 격전지로 꼽혔던 서울 강동구갑 선거의 경우 선거구 획정 방식이 달랐다면 판세가 크게 바뀌었을 것으로 조사됐다. 현역 여성 의원끼리 맞대결을 벌여 주목받았던 이곳에서 진선미 민주당 의원은 50.1%의 득표율로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47.9%)을 상대로 승리했다. 표 차는 3302표였다. 별도로 합산되는 관외사전투표를 제외한 개표단위별 선거 결과를 보면 진 의원은 강일동(2444표)과 암사1동(1253표), 상일2동(603표)에서 앞섰지만, 명일1동(1045표)과 명일2동(1259표), 고덕2동(1177표), 암사3동(433표), 상일1동(1498표)에서는 전 의원에 뒤졌다.
눈여겨볼 건 이곳이 이번에 선거구 획정이 바뀐 지역이라는 점이다. 길동이 이웃 지역구인 강동구을로 바뀌었다. 길동은 이번 선거에서 이해식 민주당 의원이 523표를 더 얻은 선거구였다. 길동이 강동갑에 남는 대신 대신 강일동과 암사1동이 강동구을로 옮겨졌다면 선거는 예측불허 속에서 치러졌을 것이다.
충남 천안시갑의 경우에는 청룡동의 표심이 비상한 주목을 받았다. 청룡동은 이번에 천안시갑에 새롭게 추가됐는데 이 지역구 현역이자 정치개혁특별위원이었던 문진석 의원은 선거구 획정 당시 반발했다. 문 의원은 "천안시갑 선거구의 면적이 천안시 3분의 2로 가장 넓은데, (획정으로) 인구도 늘고 동도 늘었다"며 "재논의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 의원이 강력히 반발한 배경을 두고서 청룡동이 2022년 지방선거 당시 시장선거에서 국민의힘 득표가 높았던 점이 고려됐다는 분석이 있다. 실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청룡동에서는 천안시장 선거의 경우 당시 이재관 민주당 후보가 7296표를 얻었지만, 국민의힘 소속 박상돈 시장은 9003표를 얻은 곳이다.
흥미로운 점은 청룡동의 천안시갑 편입이 결과적으로 문 후보에게 득이 됐다는 점이다. 문 의원은 이번 선거에서 4384표 차이로 승리했는데, 청룡동에서 2747표 앞섰던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청룡동이 천안갑에 편입 안 됐다면 선거는 보다 박빙으로 전개됐을 것이다.
당락 가를 수 있는 획정 방식…외부기관에 완전히 넘겨야
선관위 국회의원 선거구획정위원회는 22대 총선에서 한 지역구에 최소 13만6600명에서 최대 27만3200명 이내에서 선거구를 획정하도록 했다. 인구 상·하한 기준을 벗어나는 경우만 선거구의 경계 및 구역 조정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선거 경험이 누적됨에 따라 동 단위 표심까지 고려할 수 있게 되면서, 선거구 획정 문제는 후보자 입장에서 민감한 주제일 수밖에 없다. 유리해질 수도, 불리해질 수도 있는 문제인 셈이다.
문제는 획정위가 획정안을 만들더라도 국회가 재제출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해, 정치권의 영향력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한표가 아쉬운 국회의원은 최대한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게리맨더링(특정 정당·후보에게 유리하게 선거구를 자의적으로 획정하는 것)을 하려는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외부기관에 선거구 획정 전권을 넘겨, 이해당사자인 국회의원의 영향력을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2월21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정치 개혁 방안을 소개하며 "선거구 획정 권한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위임하겠다"고 밝혔다. 김진표 국회의장도 지난 16일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통해 ‘국회의원선거제도제안위원회’가 총선 1년 전까지 제출하고, 국회는 이를 반영해 총선 9개월 전까지 확정하도록 했다. 개정안에는 그동안 국회가 선거구 획정 안에 개입할 수 있었던 재제출 요구권을 박탈하는 조항도 포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