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주기자
경찰청이 잠정 집계한 올해 1분기 국내 범죄 발생 건수는 총 37만8908건이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이 발생한 범죄는 단연 사기다. 1분기에만 10만7222건(28.2%)에 달했다. 하루 평균 1000건 이상 발생한 셈이다. 직전 분기인 지난해 4분기 사기 발생 건수(8만8651건)와 비교해도 2만건 가까이 늘었다. 경찰이 분기별 범죄 현황을 공개하기 시작한 2021년 이후 특정 범죄가 10만건 이상 발생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이웃 나라 일본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다. 2022년 일본 경찰이 인지한 형사사건(교통사고 제외)은 60만1331건인데, 이 가운데 사기는 3만7928건으로 6.3% 수준에 그친다. 나라마다 범죄통계 작성 기법이 다른 점을 고려하더라도 우리나라 사기 범죄의 심각성은 두드러진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사기 사건에 국민 분노는 하늘을 찌른다. 간혹 "당할 만해서 당한다"며 피해자를 탓하는 목소리도 들리지만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 해도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예방에 한계가 있다. 범죄 수법이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어서다. 불법 다단계, 보이스피싱, 스미싱, 전세사기, 로맨스 스캠, 보험사기, 취업사기, 중고물품사기, 코인사기, 리딩방사기 등등 수많은 사기 유형을 개인이 알고 대응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사기 범죄 대응에는 국가 차원의 정책 마련이 필수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사기방지기본법’이 주목받는 이유다. 이 법안은 국가의 사기 예방 및 대응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핵심 내용은 경찰청 소속 ‘사기통합신고대응원’ 설치다. 사기통합신고대응원은 사기 신고·고발 등을 통합적으로 받고, 피해 의심 계좌 등을 신속히 차단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외국 기관과의 정보 공유, 신종 사기 유형 분석 및 정보 제공, 대국민 사기 예방교육 등도 시행한다. 사기 대응 총괄 컨트롤타워인 셈이다. 법안은 또 경찰청장이 3년마다 ‘사기방지기본계획’을 세워 시스템적으로 사기 범죄에 대응하도록 하고, 법원이 사기 범죄자의 유죄 판결 시 성범죄자처럼 신상을 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사기방지기본법의 국회 통과 여부는 불투명하다. 21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는 다음달 29일까지 처리되지 않으면 자동 폐기된다. 법의 취지나 내용에는 여야 모두 이견이 없다. 2022년 8월 발의 이후 공청회 등 1년여의 숙의 과정을 거쳐 지난해 11월 소관위인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수정 대안을 마련해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법제사법위원회에 넘어간 뒤 지난 1월 한 차례만 논의됐고, 총선 국면에서 3개월 동안 추가 논의는 이뤄지지 않은 채 계류되고 있다. 이대로라면 여야가 머리를 맞대 법안을 만들어놓고도 22대 국회에서 원점부터 재검토해야 한다.
사기 범죄의 다른 말은 ‘경제적 살인’이다. 한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간다는 점에서 사기는 살인과 다를 바 없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사기방지기본법을 두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꼭 필요한 법률"이라고 강조했다. 정치개혁, 연금개혁 등 그 어느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해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을 쓴 21대 국회가 조금이라도 얼룩을 씻어내고자 한다면 사기방지기본법이라도 책임지고 처리해야 한다. 임기를 한 달여 남긴 현 국회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