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선진기자
유럽연합(EU)이 미국, 중국 등에 맞서 첨단 산업 육성을 위한 ‘보조금 전쟁’에 뛰어들 전망이다. 지정학적 리스크와 보호무역주의, 환경규제 확대로 글로벌 교역환경이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수출 중심의 한국에 비상이 걸렸다.
블룸버그통신은 오는 17~18일 열리는 EU 27개국 특별정상회의에서 교역상대국의 적극적 보조금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EU 차원의 보조금 지원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보고서가 발표될 예정이라고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를 통해 EU는 보조금 지원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 논의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EU는 독일, 프랑스 등 경제 규모가 큰 회원국의 독자 성장 우려로 그간 보조금에 대해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최근 미국, 중국의 공격적인 보조금 정책으로 유럽 기업의 경쟁력이 뒤처진다는 불만이 커지면서 뒤늦게 대응책을 고심해 왔다. 유럽 내 4500만명의 근로자를 대표하는 유럽노동조합총연맹(ETUC)은 최근 4년간 약 100만개에 달하는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졌다는 연구 결과를 지난달 발표하기도 했다.
이번 회의에서 엔리코 레타 전 이탈리아 총리가 발표할 보고서에는 회원국들이 미국, 중국과 더 잘 경쟁하기 위해 대담하고 혁신적인 솔루션을 개발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EU 기금을 투입해 산업계를 지원하자는 게 주요 해법으로 꼽혔다. 이는 지난 1월 EU 상반기 의장국인 벨기에의 공식 요청에 따라 작성된 보고서라는 점에서 이후 관련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 매체 유락티브는 “만약 보고서의 방안이 실행된다면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에 따른 유럽 내 부정적인 영향을 상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중 간 중심으로 이뤄졌던 첨단 기술 패권을 쥐기 위한 경쟁의 막이 EU로 확산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EU의 경제 규모가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를 달리는 만큼 이 경우 세계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작지 않다는 평가다. 동시에 주요국의 보호주의 기류에 맞춰 한국도 상응하는 대비가 필요하다는 주문이 나왔다.
이철인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는 세계무역기구(WTO)를 중심으로 한 자유 무역이 흔들리고 반도체 등 첨단 산업을 육성하고 보호하기 위한 자국 중심 체제로 이행하는 시기에 있다”며 “이 기조가 확산된다면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인 한국으로서는 중장기적으로 경쟁력을 잃을 우려가 있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한국 정부가 미래 먹거리로 낙점한 특정 신기술에 한해서라도 보조금을 지급해 우리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에서 밀리지 않게 지원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