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권해영특파원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모회사 알파벳 등 미국 5대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의 현금 보유액이 5700억달러(약 771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기업이 막대한 사내 유보금을 바탕으로 인수합병(M&A), 자사주 매입·배당에 지나치게 많은 자본을 투입하는 과잉 지출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S&P 글로벌 마켓 인텔리전스를 인용해 지난해 S&P 500 편입 기업 중 애플, MS, 알파벳, 아마존,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 5개 기업의 영업현금흐름이 4768억9000만달러(약 645조원)로 집계됐다고 보도했다.
애플이 1164억3000만달러(약 157조원)로 영업현금흐름이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MS가 1026억5000만달러(약 138조원), 알파벳이 1017억5000만달러(약 137조원), 아마존이 849억5000만달러(약 114조원), 메타가 711억1000만달러(약 96조원) 순이었다. 특히 상위 빅테크 기업 5곳이 창출한 영업현금흐름 총합은 6~10위인 엑손모빌, 버크셔 해서웨이,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웰스파고, AT&T 합계(2282억2000만달러, 약 308조원)의 두 배에 달했다. 영업현금흐름 외에 장단기 투자금까지 합하면 이들 빅테크 5곳의 현금 보유액은 5700억달러에 이른다고 WSJ는 분석했다. 큰 고정 비용 없이 제품·서비스를 판매해 제조업 등 다른 업종보다 훨씬 많은 현금흐름 창출이 가능했다.
문제는 빅테크가 축적한 과잉 자본이 M&A나 자사주 매입, 배당 등에서 과잉 지출과 비효율을 낳고 있다는 점이다.
구글은 최근 온라인 마케팅 소프트웨어 업체인 허브스팟 인수를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수가는 400억달러(약 54조원) 이상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외신이 구글의 인수 타진 소식을 보도하기 전보다 30% 프리미엄이 붙은 가격이다. 구글의 역대 M&A 중 거래 규모가 가장 컸던 2012년 모토로라 인수가인 125억달러(약 17조원)의 3배가 넘는 금액이다. 구글이 당장 집행할 수 있는 투자 가능 자금만 976억7000만달러(약 132조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인수가가 부풀려지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해 주요국 경쟁당국이 빅테크의 시장 지배력 확대와 독점적 지위 강화를 견제하면서 M&A가 성사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MS의 경우 2022년 초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를 발표한 후 경쟁당국의 인허가 지연으로 인수 완료까지 2년이 걸렸다. 앞서 2016년 링크드인 인수까지 6개월이 걸렸던 점에 비춰보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다.
투자은행 제프리스의 브렌트 틸은 지난 5일 투자자 메모를 통해 "우리는 구글이 현재 논의 중인 이 거래의 이론적 근거, 이 거래가 최선의 자본 사용인지에 대한 의문을 갖고 있다"며 "격렬한 반독점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빅테크 기업들은 막대한 현금을 바탕으로 자사주 매입·배당도 대폭 확대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팩트셋에 따르면 알파벳은 자사주 매입에 2022년 590억달러(약 79조원), 2023년 615억달러(약 83조원)를 썼다. 애플도 지난해 770억달러(약 104조원)를 자사주 매입에 썼는데 이는 연간 연구개발(R&D) 비용 300억달러(약 40조원)의 두 배를 크게 상회한다. 미국 법무부는 이와 관련해 "애플은 스스로 경쟁에서 멀어지고 있다"며 "혁신에 대한 인센티브가 줄어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애플은 또한 배당금으로도 연간 150억달러(약 20조원)를 지출하고 있다.
WSJ는 빅테크가 "너무 많은 돈을 가진 것도 문제"라며 "애플, 아마존, MS와 같은 기업의 인수 시도는 철저한 조사와 지연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