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주기자
권현지기자
공사비가 치솟으면서 서울 재건축 현장 곳곳에서 신음이 흘러나오고 있다. 특히 재건축 연한인 30년이 지난 강북에서는 사업 속도가 떨어지거나 무산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치열하게 협상은 해도 공사는 이어가는 강남과는 다른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서울시는 관련 규제를 풀어 사업성 높이기에 나섰다. 향후 주택 공급 부족을 우려한 조치다. 그러나 높아진 ‘분담금’의 벽을 뛰어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현실성 있는 대책을 통해 정비사업의 속도를 높여 공급 공백을 해소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김규정 한국투자증권 자산승계연구소장은 "사업성 완화 방안으로 제시된 용적률 개선안이 나와도 기부채납 등 환수에 대한 부담은 여전하고 공사비 등 사업비용이 크게 올랐다"며 "공공성 있는 사업에 대해서는 특별계획구역 지정 등을 통해 용적률을 늘리고 공공기여 부담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분담금 없는 재건축은 점점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3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재건축 가능 단지 중 용적률이 200% 이상인 과밀 단지는 437곳 중 149곳(34.1%)이다. 재건축 연한이 도래한 1985년 이후 제3종일반주거지역에 지은 아파트들은 용적률 250% 이상인 곳들도 상당수다.
소형 평형 위주의 10층 이상 중층 아파트들은 조합원들의 추가 분담금이 많아 사업을 추진하기 어려운 곳들이 많다. 1979년 이전 준공된 용적률 180% 이하 저층·중층 아파트를 재건축하던 시절보다 재건축 사업성 자체가 확 떨어진 것이다. 당시 조합원들은 추가 분담금 없이 새집을 분양받고 청산금을 돌려받기도 했다.
재건축 사업의 성패는 ‘사업성’으로 나뉜다. 용적률을 높여 추가로 짓는 주택 수가 많고, 분양가를 높게 책정할 수 있는 곳일수록 사업성이 높다. 2022년 하반기 이후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부동산 시장이 침체하면서 사업성이 전반적으로 악화했다. 일반분양 수입이 줄고 공사비가 급증하면서 사업을 중단하거나 지연되는 곳이 속출했다.
특히 강북에서 재건축 사업 속도가 확 떨어졌다. 강북 고밀 단지들은 10평대의 소형 평형이 많아 대지 지분이 낮다. 평수를 넓혀 분양받으려면 지급해야 하는 추가 분담금도 늘어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시공사가 공사원가에 적정 이윤을 매겨 공사비를 책정하는데 일반분양 물량이 너무 적다면 조합원들이 대부분의 사업비를 조달할 수밖에 없다"며 "강남과 달리 강북은 조합원들이 분담금을 지불할 경제적 여유가 적다. 분담금 액수가 거론되기 시작하면 사업이 중단되거나 삐걱대기 일쑤"라고 말했다.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840가구)’는 높은 분담금으로 사업이 중단된 대표적 사례다. 이 단지는 전 가구가 전용면적 37㎡(약 11평)로 구성된 소형 평수 단지다. 기존 보유한 대지 지분이 적다 보니 재건축 추가 분담금이 컸다. 전용 84㎡(약 25평)를 선택할 경우 조합원당 분담금이 5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최근 매매가(4억7000만원)보다 높은 액수다. 공사비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하자 조합은 결국 지난해 11월 시공사 GS건설과의 시공 계약을 해지하고 새로운 시공사를 찾을 예정이다.
강남권 재건축 대어로 꼽히는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3930가구)’는 상황이 다르다. 분담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환급금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이 단지는 중형 평수(전용 76.5~82.5㎡)로 구성돼 가구당 대지 지분이 크고 용적률(138%)도 낮은 축에 속한다. 종 상향(제3종 주거지역→준주거지역)이 확정되면서 재건축 이후 용적률이 300%를 웃돌 것으로 보인다.
인근 A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총가구 수가 6800여가구로 늘어나 분양 수익이 높은 전망"이라며 "조합원이 같은 평형을 선택할 경우 환급금을 받을 수 있다는 예상이 많다"고 전했다. 오랜 시간 발목을 잡아 온 학교 용지 문제가 최근 해결되면서 사업에 속도가 붙고 있다.
지난 2월 말 기준 서울 민간 아파트 평균 분양가는 3.3㎡당 3781만원이다. 서초구 ‘메이플 자이’는 분양가가 3.3㎡당 6705만원이었지만 442대 1의 청약경쟁률을 기록했다.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아도 주변 시세가 높은 강남 재건축 단지들의 경우 분양 수익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예다.
시공사들도 ‘돈 되는 사업장’ 중심으로 수주에 나서고 있다. 지나치게 낮은 공사비를 책정한 사업에는 참여하지 않고 사업성이 높은 곳에만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재건축 후 환급금을 돌려받는 여의도 한양이 대표적이다. 현대건설은 여의도 한양 시공권을 따내기 위해 동일 평형에 입주하면 분담금 0원, 미분양 발생 땐 최초 일반분양가로 대물 인수한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워 시공사로 선정됐다.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경쟁이 발생할 경우 저가 수주를 할 수 있다는 우려에 수주 가능성이 높은 곳 중심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재건축 사업의 관건이 인허가가 아닌 개별 조합원들의 자금 여력이 된 이상, 당분간 강북에서 재건축 사업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정부 때 집값이 급등하면서 사업성이 지지부진했던 곳 중 재건축을 마무리한 사례들이 있는데, 이처럼 급격한 환경 여건 변화가 없이는 어렵다"며 "조합원들의 ‘분담금 액수’에 사업의 추진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조합원들이 수익만 좇기보다는 보다 현실적인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과거에는 재건축을 투자재 성격으로 봤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 원가를 회수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사업을 서둘러 분담금을 줄이거나 조합원들이 재건축 후 분양 주택을 소형으로 선택하되 넓은 평형을 분양해서 수익을 보전하는 등 현실적인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