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신약명가(新藥名家) 장남의 책임

한미약품 경영권 분쟁 승리한 임종윤
창업자 정신과 주주들 지지에 답해야

OCI와 통합 이슈로 시끄러웠던 한미약품에는 여타 제약회사와 다른 면이 있다. 일단 업력이 상대적으로 짧다. 98년 된 유한양행이나 83년 전통의 종근당 등을 생각하면 51살 한미약품은 단기간에 상위 제약사에 진입한 거의 유일한 사례다.

비결은 공격적 영업이었다. 한미약품이 폭풍 성장하던 2000년대 초반, 리베이트 사건이 터지면 빠짐없이 등장했다. 골프장 로비에는 손님이 들고 온 고급 옷가방들이 널려 있는데, 두세 개 건너 하나에 한미약품 제품 로고가 새겨있었다. 가방 주인은 의사나 약사, 공무원이었을 것이다. 수도 없이 많은 병원의 텔레비전이나 약국 진열대도 한미약품이 바꿔줬다.

경쟁사들은 이런 한미약품을 비난하면서 동시에 두려워했다. 다른 창업자들에 비해 한참 후배인 임성기 회장이 업계 맏형이던 고(故) 강신호 회장의 동아제약을 적대적 인수합병(M&A)하려 했을 때가 절정이었다. 업계 선배들로부터 비판이 쏟아지자 결국 포기했지만 한미약품이 앞으로 제약업계 판도를 바꿔놓을 것이란 생각은 지배적으로 퍼졌다.

최근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라는 말로 유명해진 노환규라는 의사도 한미약품 역사에 등장한다. 그에게 밉보인 한미약품을 상대로 노씨는 불매운동을 전개했고(2010년), 많은 의사가 집단행동에 동참하며 회사가 휘청거렸다. 창사 후 첫 적자도 겪었다. 임 회장과 노씨는 2년 뒤 화해했다. 두 사람이 손을 잡은 곳은 한미약품이, 당시에는 업계 최고 수준의 상금을 의사들에게 주는 행사장이었다.

그렇게 좌충우돌 악착같이 회사를 키운 임 회장은 "의약품 주권을 지키기 위한 여정은 외롭지만 결실은 보람찰 것"이라 선언하며 신약개발에 집중 투자했다. 그러나 그 결실은 보지 못했다. 임 회장이 2020년 작고하고 불과 4년 만에 회사는 경영권 분쟁에 휩싸였다.

임 회장의 장남 임종윤은 2000년 회사에 입사해 2009년 사장이 됐다. 베이징한미를 잘 키워 경영 실력을 입증한 그는 의심할 이유가 없던 후계자였다. 그러나 아버지 사후 각각 회장과 부회장에 오른 송영숙·임주현 모녀가 자신을 배척하고 회사를 OCI와 통합하려 하자 반기를 들었다.

지난 3월 28일 열린 한미사이언스 정기 주주총회에서 52%의 찬성표를 얻어 이사회 장악에 성공한 임종윤 한미약품 이사(왼쪽)와 임종훈 이사가 악수하고 있다.[사진=이춘희 기자]

3월28일 열린 지주사 한미사이언스 주주총회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국민연금까지 모녀 편을 들어 패색이 짙었지만 소액투자자, 이른바 개미들이 임종윤과 동생 임종훈 형제를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종윤·종훈 형제는 이사회를 장악했고 결국 통합은 무산됐다. 이제 한미약품의 미래가 담긴 청사진을 제시할 책임이 임종윤에게 부여됐다.

업계 종사자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제약보국’이란 말이 있다. 우수한 약으로 국가에 보답한다는 뜻인데, 사기업이 이런 비전을 공식적으로 내거는 업종이 또 있을까 궁금하다. 임 회장도 생전에 누차 강조했던 제약보국과 신약명가의 꿈을 실현할 전략을 임종윤은 가지고 있을까.

“연구개발(R&D)은 내 생명과 같다"고 말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신약개발 자금을 마련하려 했던 선대 회장의 비장한 투지는 어떤가. 마침내 경영권을 쥔 그가 반대편에 대한 앙심이나 보복 따위에 에너지를 허비한다면 그의 진정성은 의심받을 것이다. 신약개발에 일생을 바친 창업자와 직원들 그리고 자신을 믿어준 주주들은 임종윤의 답을 기다리고 있다.

편집국 신범수 산업 매니징에디터 answer@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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