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술과 신제품 등장 이후 제품을 규제하는 법은 한발 늦게 따라오게 마련이다. 2020년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서는 일반담배 포장지에 인쇄되는 경고 그림이나 금연 문구를 전자담배에도 적용하기 시작했다. 흡연자인권연대에서는 이에 반하는 소송을 진행했지만 결국 이번 달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전자담배에 경고 표시를 하는 것이 위법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비흡연자 입장에서는 전자담배도 연초와 똑같은 담배처럼 보일 수 있어서 일반담배에 적용되는 법이 왜 이제야 전자담배에 적용됐는지, 왜 애초에 이러한 소송이 가능했는지 의문일 수 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현행법상 담뱃잎을 원료로 사용한 제품만 담배로 규정하기 때문에, 담배 줄기나 뿌리를 연료로 사용하거나 합성 니코틴을 재료로 쓰는 액상 전자담배는 담배로 분류되지 않는다. 따라서 담뱃세도 전자담배에는 부과되지 않는다.
이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연초를 불로 태워서 소비하는 제품을 담배로 규정하고 있기에, 액상 전자담배는 아직 담배로 규정되지 않는다. 미국에서 담배는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 광고할 수 없도록 규제되지만 전자담배는 이를 피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의 최대 전자담배 제조사인 쥴 랩(Juul Lab)은 약 10년 전부터 공격적으로 텔레비전 광고를 해 왔다. 미국 정부는 전자담배가 청소년들 사이에서 비약적인 인기를 끄는 가장 큰 이유가 쥴의 광고 때문이라고 여기고, 뒤늦게 전자담배의 광고를 규제하기 시작했다.
전기자동차 역시 미국 내 일반법 적용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 자동차 제조업자는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따라서 독립적인 딜러를 통해서만 자동차를 판매할 수 있다. 하지만 테슬라는 유일하게 이 법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미국 법상 연료를 연소시키면서 에너지를 얻는 내연기관이 있어야 자동차로 분류되는데, 전기자동차는 내연기관이 없으므로 테슬라 자동차는 아직 법적으로 자동차가 아닌 셈이다. 그래서 테슬라는 미국에서 유일하게 소비자에게 직접 자동차를 판매한다. 딜러들은 이에 반대하는 소송을 수없이 걸어왔고, 전기자동차 판매 방법에 대한 법적인 불확실성은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
지난 몇 년 사이 새롭게 등장한 공유경제서비스도 비슷한 진통을 겪고 있다. 한국에선 불법이지만 미국에선 합법인 차량공유서비스 우버 (Uber)는 최근 운전자에게 최저임금법을 보장해야 한다는 안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법의 도마에 오르게 됐다. 뉴욕에서는 숙박공유서비스 에어비앤비(AirBnB)로 집을 대여할 때 투숙객이 묵는 동안 주인도 거주해야 한다는 법이 새로 생겨났다. 상용화된 지 10년이 지난 서비스도 여전히 규제 불확실성에 놓여있는 상황이다.
근래에는 미국 언론사인 뉴욕타임스가 챗GPT를 개발한 오픈에이아이(OpenAI)와 인공지능 검색엔진을 운영하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대상으로 소송을 냈다. 인공지능 학습 과정에서 뉴욕타임스 콘텐츠를 허가 없이 사용했다는 이유에서다. 언제 이 소송이 종결될지 알 수 없지만 향후 몇 년 동안은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규제는 여전히 논란거리일 것이다.
서보영 美인디애나주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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