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송승섭기자
최근 우리나라 고용이 좋다는 기사 읽어보신 적 있나요? 그렇다면 고용률이 ‘역대 최대’라는 기사 제목도 보신 적 있으실 겁니다. 실제로 우리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일자리를 구하기 쉬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경제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성장률은 자꾸만 떨어지고요. 이상하지 않나요? 경제는 점점 어렵다는데, 왜 고용은 갈수록 좋아만 질까요?
지난해 한국의 취업자는 32만7000명이었습니다. 15세 이상 고용률은 62.6%였죠. 고용률이 얼마나 높았냐면 우리 정부가 고용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63년 이후 역대 최고치였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비교 기준인 15∼64세 고용률도 69.2%로 역대 최고였죠. 올해는 이 기록을 다시 갈아치우고 있습니다. 지난달 고용률은 2월 기준으로 가장 높았습니다. 심지어 청년층, 중장년, 고령층 할 것 없이 고용률과 경제활동참가율이 일제히 상승했죠.
고용이 이 정도로 좋아지려면 보통 경제가 아주 좋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경제는 동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4%입니다. 역대 6번째로 낮죠. 오일쇼크나 IMF 사태, 글로벌 금융위기 등 큰 위기가 있었던 때를 빼면 사실상 최저치입니다. 올해 상황도 어둡습니다. 정부는 지난해 7월만 해도 2024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2.4%로 내다봤지만, 지난 1월 ‘2024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전망치를 0.2%포인트 내렸죠.
경제가 어렵다면 기업들도 사람을 많이 뽑기 어려운데, 대체 어떻게 고용이 좋았던 걸까요? 이를 이해하려면 ‘취업’의 진짜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통계에서 취업자란 돈을 벌기 위해 일주일 동안 1시간 이상 일한 사람입니다. 월~금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는 회사원만 취업자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때 첫 번째 착시가 생깁니다. 국민들이 생각하는 취업과 통계에서 의미하는 취업 사이에 괴리가 있는 겁니다. 우리는 “취업했다”는 말을 보통 생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직장을 구했을 때 씁니다. 잠시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취업했다”라고 표현하지 않죠. 그러나 통계에서는 어떤 일이건 간에 여러분이 일주일에 딱 1시간만 노동한다면 취업자로 분류합니다.
통계청에서 고용이 좋아 보이도록 일부러 꼼수를 부린 것은 아닙니다. ‘1주일 1시간 노동’은 오히려 ‘국제 룰’입니다. 기준을 만든 게 국제노동기구(ILO)거든요. 왜 이렇게 규정이 널찍하나 싶지만 합리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한 국가의 총생산을 측정하려면 총노동투입량을 알아야 합니다. 정확한 계산을 하려면 노동이 얼마나 이뤄졌는지 최대한 파악해야 하고요. 만약 주5일제 근로자만 취업자로 인정하면, 단기근로자는 계산에서 누락되는 문제가 생깁니다. 단시간 근로자나 교대 근로자가 얼마나 일했는지도 알 수 없었을 거고요.
취업자를 어떻게 계산하는지 이해했다면 또 다른 의문이 듭니다. 아르바이트하면서 직장을 구하는 청년은 취업자일까요? 실업자일까요? 통계청은 분명 1주일 1시간 이상 일한 사람을 모두 취업자로 분류한다고 했죠. 그런데 통계청에서는 입사원서를 제출하거나 면접을 보는 등 구직활동을 한 사람을 실업자로 봅니다. 그러니 위 청년은 취업자이면서도 실업자인 셈이죠.
여기서 두 번째 착시가 일어납니다. 취업자와 실업자 분류에 모두 해당하는 사람은 무조건 취업자로 분류합니다. 노동자의 상태를 반드시 하나로 정하는 ILO의 ‘우선성 규칙’ 때문입니다. 규칙에 따르면 통계를 조사할 때는 ‘취업인 사람을 먼저 파악’합니다. 나머지 사람 중에서 실업자를 가려내고요. 예를 들어 편의점 야간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면서 대기업 입사 원서를 넣고 있는 20대 청년을 생각해봅시다. 우리는 이 청년을 실업자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통계에서는 우선성 규칙이 적용되므로 취업자에 해당하죠.
물론 이런 규칙은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었습니다. 단지 과거에는 착시를 일으키지 않았을 뿐이죠. 고용 대부분이 9시부터 6시까지 일하는 정규직 일자리에서 나왔고, 일주일에 1시간만 일하는 일자리를 찾아보기 어려웠거든요.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했고, 원할 때 일하고 쉬는 방식의 일자리가 나타났습니다. 배달 플랫폼으로 일하는 ‘라이더’가 대표적이죠. 라이더는 자유롭게 근무시간을 결정하고, 원한다면 언제든 그만둘 수 있습니다. 이런 단기 일자리가 늘수록 우리가 느끼는 고용상황과 통계의 괴리는 커질 수밖에 없고요.
마지막 착시효과는 계산방식 때문에 생깁니다. 고용률은 취업자가 몇 명인지를 알아보는 지표인데요, 전체 국민 중에서 일하는 사람이 몇 명인지 알아보는 게 아닙니다. ‘경제활동인구’ 중에서 취업자가 몇 명인지 파악하는 거죠. 경제활동인구는 만 15세 이상 인구 중에서 돈을 벌기 위해 노동을 제공할 의사와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여기에 해당하지 않으면 아예 고용률 계산에서 빼버리고요. 이렇게 고용률 계산에서 제외되는 대표적인 사람들에는 가정주부, 학생, 군인, 일을 할 수 없는 연로자 및 심신장애자 등이 있죠.
통상 우리는 취업자가 많이 늘어서 고용률이 올라간다고 생각하는데요.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도 고용률이 증가합니다. 최근 고용률이 늘어난 배경에 ‘쉬었음’ 인구의 증가가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죠. 경제활동인구에 해당하려면 일을 하겠다는 의사가 있어야 합니다. ‘일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들고, 고용률이 올라가죠. 실제로 그냥 쉬는 30~40대가 사상 처음으로 60만명을 넘어섰습니다. 통계를 작성한 이래 역대 최대입니다. 우리가 고용지표를 마냥 좋게만 바라볼 수 없는 이유죠.
정리하자면 고용률이 이렇게 높은데도 ‘먹고살 만한 일자리가 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고용 통계는 어디까지나 우리 땅에서 노동이 얼마나 이뤄졌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지, 연봉 높은 양질의 일자리가 많다는 뜻은 아니니까요. 국민들이 원하는 바람 역시 숫자로 보이는 고용률이 아니라, 일한 만큼 정당하고 충분한 보상이 주어지는 일자리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