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진기자
일본 대기업들이 13일 노조와의 협상에서 대대적인 임금 인상안을 수용했다. 전례 없는 통화 완화 정책을 펼쳐온 일본은행(BOJ)이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내려놓을 수 있는 환경이 점차 마련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도요타, 일본제철, 닛산 등 일본 주요 대기업들이 2024년 춘계노사협상 답변일인 13일 노조의 임금 인상안을 수용키로 했다.
도요타는 이날 1999년 이후 최근 25년 내 가장 큰 폭의 임금 인상을 요구해온 노조의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도요타 노조는 월 급여 최대 2만8440엔(25만3000원) 인상과 사상 최대 규모의 보너스 지급을 요구해왔다.
닛산도 월 평균 임금을 1만8000엔 인상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현행 임금 제도가 도입된 2005년 이후 최대 인상 폭이다. 다른 자동차 제조업체들인 혼다와 마쓰다는 지난달 이미 임금을 전년도보다 더 올려주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혼다는 노조 요구보다 높은 5.6%를 올려주면서 1990년의 6.2% 이후 가장 높은 인상률을 기록했다. 마쓰다도 노조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면서 6.8% 인상하기로 했다.
철강 업계도 임금을 대폭 인상했다. 일본제철은 이날 기본급을 노조가 요구한 5000엔을 초과해 월 3만5000엔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임금 인상률은 기본급만 11.8%, 정기 승급분을 포함하면 14.2%가 된다. 앞서 노조가 금액 기준으로는 50년 만에 최대 수준인 월 3만엔으로 인상을 요구했는데 회사가 이를 크게 웃도는 월 3만5000엔으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철강 대기업인 JFE스틸과 고베제강소도 노조의 요구대로 임금을 인상했다. 임금 상승률은 각각 12.5%, 12.8%였다. 아사히신문은 "이번 춘계노사협상에서 상징적인 것이 바로 철강 업계"라면서 "높은 물가뿐 아니라 인재를 확보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경영진의 결정에 힘을 실었다"고 전했다.
이밖에 히타치제작소와 파나소닉 홀딩스, 미쓰비시중공업, 가와사키중공업, 미쓰비시전기, NEC, 후지쓰도 기본급 인상에 대한 노조의 요구를 완전히 수용해 월 1만3000엔에서 1만8000엔 사이의 임금 인상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이번 일본 대기업의 임금 인상 결정은 이달 18~19일에 있을 BOJ의 금리 결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전망이다. BOJ는 2016년 이후 침체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통화 완화 정책을 이어왔다. 최근 일본 가계는 원자재 가격 상승과 엔화 약세로 생활용품 가격이 오르면서 경제적으로 큰 부담을 안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기업과 노조 간 협상 결과에 따라 올해 임금 인상 폭이 지난해보다 더 커질 것으로 예상하면서 BOJ가 마이너스 금리 체제를 마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일본 경제가 오랜 디플레이션을 겪은 만큼 임금 인상으로 물가가 안정적으로 상승하면 경기 활성화까지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 정부도 이를 고려해 재계 지도자들에게 인플레이션을 초과하는 임금 인상을 거듭 요구해왔다.
일본 최대 노조 조직인 렌고(連合·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는 봄철 임금협상인 '춘투(春鬪)'에서 1993년 이후 최대인 5.85%의 평균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렌고는 금주 후반 첫 번째 임금 협상 결과 집계를 발표할 예정이다. 블룸버그통신은 "BOJ의 차기 통화정책회의를 앞둔 상황에서 회의 결과를 부분적으로 암시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