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준기자
22대 총선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여야는 최대 격전지인 수도권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반도체 벨트' 핵심인 '경기 용인시갑'을 놓고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개혁신당 간 치열한 3파전이 펼쳐지고 있다.
용인시갑 선거구는 용인시에서 가장 큰 면적을 가진 처인구(467.6㎢) 전역을 아우른다. 서울시(605.2㎢)의 77.3%에 달한다. 최근 10년 동안은 보수 진영에게 '양지'였다. 지금의 선거구가 획정된 19대 총선부터 21대 총선까지 이우현ㆍ정찬민 전 의원 등 국민의힘 계열이 승리했다. 다만, 지난 대선 땐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승기를 잡는 등 표심이 출렁이고 있다.
용인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이 합류하고, 정부도 '초대형 클러스터' 조성에 나서면서 거대한 변화를 앞뒀다. 주민들의 화두는 '교통망 확충'이다. 원도심이 많고 교통 여건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반도체 생산 시설들이 잇따라 들어설 경우 출퇴근 차량이 늘어나면서 더욱 혼잡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철역 신설, 철도망 확충 등 여야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들도 '교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7대 총선 이래 지역구 국회의원이 모두 구속 수감된 독특한 지역이기도 하다. 주민들이 후보자의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배경이다. 17~18대 재선을 지낸 우제창 전 통합민주당 의원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징역 1년, 이우현 전 의원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징역 7년을 받았다. 정찬민 전 의원도 지난해 8월 제3자 뇌물공여죄로 피선거권을 상실하면서 공석이 됐다. 민주당 지역위원장을 지낸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도 현재 '쌍방울 사건'으로 구속 수사를 받고 있다.
지난달 28일 오후 찾은 현장에선 양향자 개혁신당 원내대표에 호의적인 분위기가 엿보였다. 용인시청 삼거리와 명지대 사거리를 오가며 '거리 인사'에 나선 양 원내대표를 본 주민들이 먼저 손을 잡고 반가움을 표하기도 했다. 양 원내대표는 광주여상을 졸업하기도 전인 열여덟 살 때부터 용인에 둥지를 틀고 30년 넘게 반도체 산업에 종사해온 전문성을 부각했다. 고졸 출신으로 첫 삼성전자 여성 임원까지 오른 '반도체 신화'를 용인에서 이뤄냈다고 강조한 것이다.
건널목에서 거리 인사를 지켜보던 주부 성지현씨(42·여)는 "정치 싸움이나 비난을 하기보다 능력을 강조하는 것 같아 신선하다"며 "같은 여성으로서 존경할 만한 이력을 갖고 있어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양 원내대표는 영입 인재로 민주당에 합류한 뒤 최고위원까지 올랐으며, 민주당을 떠난 뒤엔 국민의힘 측 제안으로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선 '한국의희망'을 창당하며 제3지대로 나섰다.
그는 "반도체 공장을 하나 지어도 어떤 장비가 언제 투입돼야 하는지 알아야 협의가 빠르게 진행된다"며 "국회에 저만큼 반도체를 잘 아는 전문가는 없다"고 자신했다. 그러면서 "예결위에서 활동한 경험도 법안 처리 등에서 도움이 많이 될 것"이라며 "용인이 '반도체 수도'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K-칩스법' 시즌 2까지 반드시 완수하겠다"고 했다.
'반도체 일자리'와 함께 유입될 젊은 인구가 지역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정주 여건'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교통 문제에선 '반도체 고속도로' 개통과 더불어 용인터미널에서 '직행 셔틀버스'로 동쪽의 원삼 SK하이닉스, 서쪽의 삼성전자 동탄캠퍼스, 남쪽의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북쪽의 삼성전자 기흥캠퍼스를 잇는 교통망 확충을 약속했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지난달 26일 윤석열 대통령의 '복심' 이원모 전 대통령실 인사비서관을 우선추천(전략공천)했다. 이 전 비서관은 당초 서울 강남구을 공천을 신청했지만, '참모들이 양지만 찾는다'는 비판이 나오자 당에 지역구를 일임했다. 국민의힘은 '반도체 벨트'로 묶이는 용인·수원·화성 지역에 영입 인재 등을 전략적으로 배치하면서 승부를 걸고 있다.
이 전 비서관은 검찰 시절 국정농단부터 삼성바이오로직스 수사,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 지휘 등 주요 사건을 담당했던 특수부 검사였다.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 때 특수부 검사, 검찰총장 시절에는 대검 검찰연구관을 지내면서 '윤석열 사단의 막내'로 불리기도 했다. 윤 대통령의 중매로 2012년 자생한방병원 이사장의 차녀와 결혼한 이야기도 잘 알려져 있다.
이 전 비서관은 용인시갑 공천에 대해 "좌고우면 없이, 힘 있고 깨끗한 후보가 용인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시민의 명령으로 받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윤 대통령의 신임과 별개로, 여당 입장에선 안심하기 어려운 지역구다. 각종 택지개발로 30·40세대가 유입되면서 보수세가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대선 때도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앞선 만큼 '혼전'이 예상된다.
이 전 비서관은 지난달 29일 용인시의원 등을 면담하며 지역구 활동에 돌입했다. 이르면 이번 주에 선거사무소를 개소하고, 공약을 발표하는 등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주민들과 접촉면을 늘려가는 것은 물론, 기존 예비후보자를 설득하는 것도 과제다. 일단 김대남 전 대통령실 행정관이 우선추천 결정 직후 이 전 비서관에 대한 지지를 선언한 상태다.
이원모 전 비서관 측 관계자는 아시아경제와의 통화에서 "정부가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 지원을 두껍게 하는 상황에서 원활한 협의를 끌어내기에 적합한, 힘 있는 후보라는 점을 알릴 계획"이라며 "단순히 최첨단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지역경제 발전과 함께 '하이테크 시티'로 확장될 수 있도록 하는 계획을 구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진표의 마지막 퍼즐은 민주당에 달렸다. 민주당 전략공천관리위원회는 지난달 29일 권인숙 의원(비례)과 이상식 전 부산경찰청장, 이우일 전 지역위원장(직무대리) 간 '3인 경선'을 결정했다. 경선은 결선 없이 치러진다.
권 의원은 지난해 6월 처인구에 지역사무소를 열고 기반을 다져 왔다. 노동운동에 투신하면서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의 피해자가 됐던 그는 여성 인권 분야에서 상징적 인물이다. 지난 총선에서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로 원내 입성에 성공했으며, 초선으로는 드물게 국회 여성가족위원장까지 역임했다. 권 의원 역시 '반도체'와 '교통'에 초점을 맞췄다. 당선 시 1호 법안으로 '국가산단 정주여건 지원 특별법(가칭)'을 추진, 모범적인 배후도시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국가산단 예정지 피해 주민들을 위한 지원 대책을 마련하는 한편, 교통 분야에선 지하철 3호선·경강선 연장 및 GTX 연결 등 광역교통망 확대를 제시했다.
'TK 출신' 이상식 전 부산경찰청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 대통령실 민정비서관 행정관을 지냈지만,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하면서 민주당에서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2018년 지방선거 때 대구시장 예비후보로 출마했지만, 결선에서 패한 뒤 대구 수성구을 지역위원장에 선임됐다. 21대 총선에선 대구 수성구을에 출마했다가 3위로 낙선했다. 이재명 대표가 유력한 대선 주자로 떠오를 당시 '민주평화광장' 발기인에 이름을 올리면서 '친명계'로 분류된다.
이우일 전 지역위원장도 이재명 대표와 연이 깊다. 국회사무처 정책연구위원, 국회의원 보좌관 등을 거쳐 이재명 대표가 재선 성남시장 시절 성남도시개발공사 관리사업본부장으로 일했다. 대선 때마다 노무현·문재인·이재명 선대위에서 모두 활동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이해찬 전 대표가 이사장으로 있는 사단법인 동북아평화경제협회 이사로도 활동했다. 선거사무소 개소식 날, 수감 중인 이화영 전 부지사가 "이우일 위원장은 오랜 동지이자 동료"라며 지지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