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쇼' 서현우 “연기로 나만의 우주 발견했죠”[온더레코드]

배우 서현우 인터뷰

디즈니+ ‘킬러들의 쇼핑몰’ 스나이퍼役
탄탄한 연기력 ‘제2의 송강호’ 기대
“박찬욱 ‘헤어질 결심’ 인생 분기점”

배우 서현우[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송강호 바통을 받을 배우다.’

영화계는 꽤 오래전부터 배우 서현우(40)를 주목해왔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기를 배웠고, 발바닥에 땀 나도록 무대를 누볐다. 이후 영화·드라마에서 조금씩 얼굴을 알렸다. 연기력은 곧 입소문을 탔다. 동료 배우들이 진가를 먼저 알아봤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2018), 영화 '남산의 부장들'(2020)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며 이름을 각인시켰다. 이제 제법 많은 책(대본)을 받는 배우가 됐다. 박찬욱 감독도 그를 선택했다. 푸릇푸릇한 '청춘'을 무기로 든 배우가 아닌 탄탄한 연기 지층을 지닌 보물 같은 배우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킬러들의 쇼핑몰'(감독 이권)에서 서현우는 냉혈한 스나이퍼 이성조로 분해 새로운 얼굴을 드러냈다. 이성조는 죽은 삼촌(이동욱)의 유산으로 킬러들의 표적이 된 조카 지안(김혜준)의 숨통을 조인다. 무자비하지만, 긴박한 상황에서도 위트 있는 모습으로 웃음을 자아낸다. 자칫 평면적일 수 있는 킬러를 입체적으로 구현했다고 평가받는다.

서현우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진행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서 "원작 웹툰의 분위기와 느낌을 참고했지만, 별도로 참조할 만한 배역은 없었다"고 했다. 이어 "성조는 오로지 감독님이 창조한 인물이라고 보고 작품에서 맡은 기능적 역할에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살아남는 게 가장 중요했다. 기회주의자이고 물질을 탐한다. 위트와 진중함의 간극을 조절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했다.

배우 서현우[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목적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스나이퍼를 연기하기 위해 촬영 3개월 전부터 액션 훈련과 사격 연습을 했다. 서현우는 "무술팀, 총포사 사장 등 전문가들에게 총을 잡는 파지법과 사격 방식을 배웠다. 외국 용병 영상도 참고했다. 나라마다 전문가들의 의견이 달랐는데, 모든 방식을 수용하며 연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실탄 사격 연습에 힘썼다. 권총 액션을 할 때 나는 총소리에도 익숙해져야 했다. 어떻게 하면 총을 정교하고 노련하게 다룰지 고민했다"고 전했다. 다른 무기로 도끼를 사용한 설정에 관해서는 "스나이퍼 기질을 연구했는데, 숨어서 누군가 저격하는 습성과 다치는 걸 조심하는 습성이 있었다. 도끼는 근접전에서 사용되는데, 일격필살로 상대를 한 번에 제압하는 기능이 스나이퍼의 기질과 잘 어울린다고 봤다"고 했다.

촬영에서 잡은 총기들은 군대에서 사용한 총기와 달라 까다롭고 예민하게 다뤘다. 서현우는 "스코프(망원조준경)를 통해 상대를 저격하는 방식이 달랐다. 저격 장면을 촬영할 때 굉장히 거리가 멀었다. 총구 방향을 1cm만 이동해도 사거리가 50~100m 이동됐다. 정교한 움직임이 요구됐다"고 말했다.

'킬러들의 쇼핑몰' 스틸[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역시 서현우'라는 말이 나온다. 총과 칼을 쥔 이질적인 킬러지만 인간적인 모습을 잘 표현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섬세한 인물 해석과 연기력이 바탕이 된 결과다. 떠올려보면 서현우의 얼굴은 작품마다 너무나 달랐다. 지질하고 유치하면서 능청스러운데,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설레는 '병구'(2015). 시원하게 벗겨진 머리카락에 탐욕스러운 욕망을 숨긴 채 복종하는 '남산의 부장들' 전두혁. 온몸에 문신 칠갑을 한 채 아내를 향해 욕설과 폭력을 서슴지 않는 극악무도한 '헤어질 결심'(2022) 사철성. 깐깐하고 의뭉스럽지만, 집에 두고 온 고양이를 보러 가기 위해 경성으로 가려는 개성 있는 '유령'(2023) 천계장까지. 매 배역 힘있게 완성했다. '제2의 송강호'라 불리며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이유다.

"영광이죠.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감사해요. 익숙함을 경계하려 해요. 캐릭터에 나를 비벼내는 법에 익숙해져 가는 저를 채찍질하려 해요. 작품이 끝나면 완벽하게 배역에서 빠져나오고요. 촬영할 때는 배역에 몰두하지만, 끝나면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와요. 저를 중립적 인간으로 만들려고 해요."

연기 인생 분기점이 된 작품을 묻자,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2022)을 꼽았다. 제75회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영화다. 서현우는 "변화를 체감하게 해준 작품"이라고 했다. 그는 "그해 '디렉터스컷 어워즈'에서 상(올해의 새로운 남자배우상)을 받았다. 영화사에 다니며 프로필을 돌릴 때 보지 못했던 영화감독님들을 한자리에서 봤다. 덕담을 많이 해주셨다. 어안이 벙벙하고 믿기지 않았다"고 떠올렸다. 이어 "잘하고 있다는 확신과 용기가 생겼다. 큰 힘이 됐다"고 했다.

배우 서현우[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서현우의 동력은 '촬영장'이다. 그는 "때론 체력적, 정신적으로 부치지만 촬영할 때 가장 재밌다. 취미가 없다. 일이 없으면 집에 있다. 그래서 촬영장에 있는 게 가장 좋다. 때론 '내가 맞다, 네가 맞다' 치열하게 논하지만, 그 과정이 즐거운 '놀이'다. 좋은 작품을 정교하게 잘 해내고 싶은 책임감도 있다. 일 중독 같지만, 이 모습이 바뀔까. 지칠 땐 오히려 작품을 더 한다. 현장에서 가장 큰 에너지를 받는다"고 했다.

"연기하며 나를 발견해가는 과정이 재밌어요. 배역을 선택하는 데 용기를 내면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이 보여요. 그런 도전이 흥미롭죠. 내 안의 우주를 계속 발견해가고 있어요. 연기한 인물을 보며 '엄마를 닮았다', '아빠 얼굴이 나오네' 싶기도 하고요.(웃음) 도전은 곧 창작자로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죠. 연기를 한다는 것, 그 자체가 소중해요."

이슈1팀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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