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문서파쇄 트럭 지입차주도 근로자… 요양급여 지급 대상'

직접 트럭을 구입한 뒤 회사와 위탁계약을 맺고 문서파쇄 및 운송업무를 수행하는 지입차주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이기 때문에 업무 중 사고를 당한 경우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요양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문서파쇄 트럭 지입차주 윤모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급여 불승인 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재판부는 "원심판결에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및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파기환송의 이유를 밝혔다.

윤씨는 지입차주로 A사의 문서파쇄 및 운송업무를 수행하던 B씨로부터 2012년 6월 차량 대금 1300만원, 권리금 3500만원을 주고 8톤짜리 문서파쇄 트럭을 양수했다.

기업체로부터 문서파쇄를 의뢰받아 현장에서 문서파쇄를 대행해주는 회사인 A사는 문서파쇄 및 운송 업무를 운수회사인 C사에 위탁했고, 윤씨는 B씨로부터 구입한 트럭을 C사에 지입하는 내용의 화물자동차 위수탁관리운영계약을 체결하고 문서파쇄 및 운송 업무를 수행했다.

2012년 8월부터 A사로부터 매월 부가가치세 포함 407만원과 유류비를 따로 지급받은 윤씨는 수입 중 일부를 지입료로 C사에 지급했다.

윤씨의 차량에는 A사 소유의 문서파쇄에 필요한 파쇄기와 유압 및 전기장치 외에 A사의 로고와 광고물이 부착돼 있었고, 윤씨에게는 A사 소속임을 표시하는 명함이 제공됐다.

2017년 7월 서울 강남 소재 한 사무실의 문서를 파쇄하던 중 파쇄기에 손이 빨려 들어가 윤씨의 왼쪽 손가락 일부가 절단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윤씨는 A사 소속 근로자로 일하던 중 업무상 재해를 당했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 지급을 신청했지만 공단이 불승인 처분하자 소송을 냈다.

1·2심 법원은 윤씨를 A사의 근로자로 볼 수 없다고 보고 윤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1심 재판부는 "원고는 일정한 자본을 투자해 이 사건 차량을 인수한 지입차주로서 이 사건 위탁계약 및 이 사건 지입계약을 매개로 A사의 문서파쇄 및 운송업무를 수행하면서 그에 따른 용역비를 A사로부터 지급받은 것으로 보일 뿐이고, 임금을 목적으로 사용종속관계에서 A사에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라며 "이와 같은 취지에서 한 이 사건 처분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윤씨가 B씨로부터 차량대금에 상당한 권리금을 보태서 차량을 인수하면서 C사와 지입계약을 체결한 후 A사의 업무를 수행했는데, 윤씨와 A사 사이에 근로계약은 물론, 도급계약이나 용역계약 등 어떠한 형태의 계약도 명시적으로 체결되지 않은 점과, 윤씨가 A사의 업무를 시작할 당시 윤씨가 A사의 채용절차를 거쳤거나 A사에 직접 고용을 요구한 정황이 없는 점 등이 근거가 됐다.

A사는 윤씨처럼 지입회사와의 위탁계약에 의한 지입차주 외에도 직영기사를 통해서도 업무를 수행했는데, 매일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었고, 퇴근 전에 A사 담당직원으로부터 다음날 업무를 배정받는 등 지입기사와 직영기사 사이에 업무내용이 다르지 않았다.

1심 재판부 역시 이 같은 점을 인정하며 "원고는 A사에 전속돼 문서파쇄 및 운송업무를 한 것으로 보인다"라면서도 "그러나 원고는 A사의 취업규칙, 복무규정, 인사규정 등의 적용까지는 받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고, 별도의 사업자등록을 해 부가가치세 등을 신고·납부했으며, 자신의 비용으로 이 사건 차량을 유지·관리했다"고 지적했다.

윤씨는 항소했지만 2심의 판단도 같았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비록 윤씨가 지입차주로서 이 사건 차량을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고 그 유지·관리를 위한 비용도 일부 부담했다 하더라도, 윤씨는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A사에 근로를 제공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같은 판단의 근거로 ▲A사가 직영기사와 동일하게 지입차주인 윤씨에 대한 업무지시를 하고 근태와 업무수행을 감독하는 등 윤씨에 대해 상당한 지휘·감독을 한 점 ▲문서파쇄 업무에 필수적 설비인 파쇄장비는 A사 소유였고, 파쇄장비를 파쇄현장으로 이동시키는 이 사건 차량만 윤씨 소유였던 점 ▲윤씨는 A사가 배정한 업무만을 수행하고 A사로부터 매월 고정된 대가를 직접 지급받았으며, A사는 윤씨가 지출하는 비용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유대금을 스스로 부담했던 점 ▲A사 소유의 파쇄장비가 설치되고 A사의 상호와 광고가 도색돼 있었던 이 사건 차량은 A사의 문서파쇄 업무를 위해서만 사용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계약상으로도 금지됐던 점 ▲윤씨는 A사의 문서파쇄 및 운송 업무를 수행하던 지입차주 B씨로부터 이 사건 차량을 직접 구입했고, 지입회사로서 이 사건 차량의 자동차등록원부상 소유자이던 C사는 이 사건 차량의 매매과정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으며, 윤씨는 이 사건 차량을 운행하는 데 화물자동차 운송사업 허가가 필요해 C사와 이 사건 지입계약을 체결한 점 ▲C사는 이 사건 차량의 소유명의자로서 보험료 납부 등 행정적 지원 업무만을 대행했을 뿐, A사의 문서파쇄 업무를 원고에게 알선하거나 원고의 업무수행을 관리한 바 없는 점 ▲윤씨가 A사와 직접 계약을 체결하지는 않았고, 사업자등록을 하는 등 사업주로서의 외관을 갖춘 채 부가가치세를 납부했으나, 이러한 사정들은 노무제공의 실질에 부합하지 않는 사항이므로 원고의 근로자성을 부정하는 유력한 징표로 보기에는 부족하다는 점 등을 들었다.

사회부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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