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권해영특파원
미국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강력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시장 일각에서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상 가능성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금리 인하를 기정사실로 하며 인하 시점을 점치는 데 분주했던 투자자 일부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살아나면서 이제 금리 인상 가능성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20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과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연은) 자료에 따르면 미 국채 담보 환매조건부채권 1일물 금리(SOFR) 옵션 시장은 지난 15일 기준 Fed가 올해 금리를 한 차례 이상 인상할 가능성을 6%가량 반영하고 있다. 일부 투자자들이 Fed가 금리를 올릴 경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포지션을 취해 금리 인상 위험을 헤지하고 있는 것이다. Fed가 지난해 12월 올해 세 차례의 금리 인하를 예고했음에도 시장에서는 추가 인상 가능성을 완전히 놓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월가에서는 Fed가 금리를 추가로 올릴 가능성이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이 이 같은 논의에 불을 지폈다. 서머스 전 장관은 지난 16일 블룸버그 TV와의 인터뷰에서 인플레이션 압력 지속으로 "(Fed의) 다음 행보는 인하가 아닌 인상이 될 의미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Fed의 금리 인상 확률을 15%로 제시했다. 또 주피터자산운용은 서머스 전 장관보다 높은 20%의 확률로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예상했다.
Fed 전 당국자도 "더 높은 금리"를 언급하고 나섰다. 윌리엄 더들리 전 뉴욕 연은 총재는 이날 블룸버그 기고를 통해 현재 5.25~5.5%인 기준금리가 충분히 긴축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경제를 추락시키지 않고 인플레이션을 잡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과제"라며 "중립금리 상승이 사실이라면 Fed는 기준금리를 더 높고 길게 유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끈질긴 인플레이션이 향후 금리 인상 논란이 재점화된 원인으로 꼽힌다.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월 대비 0.3%, 전년 대비 3.1% 올라 시장 예상치(0.2%, 2.9%)를 상회했다. CPI 선행지표로 여겨지는 생산자물가지수(PPI)도 같은 달 각각 0.3%, 0.9% 상승해 전망치(0.1%, 0.6%)를 웃돌았다.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서 '라스트 마일(last mile·목표에 이르기 전 최종 구간)'이 상당히 험난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미국 대형 유통업체인 월마트도 이날 끈질긴 인플레이션에 대해 경고하고 나섰다. 더그 맥밀런 월마트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4분기(지난해 11월~올해 1월) 실적을 발표하며 "월마트 제품 전반의 가격 상승률이 둔화하고 있지만, 이 기간 동안 인플레이션 하락의 기울기는 완화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만 해도 2024년 초에는 디플레이션(물가 상승률 둔화)을 관리해야 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하락폭이 전망했던 것보다 가파르지 않았다는 것이 맥밀런 CEO의 설명이다.
BMO 글로벌 자산관리의 채권 부문 수석인 얼 데이비스는 "올해 기준금리 75bp(1bp=0.01%포인트) 인하를 예상하지만 높은 확신을 갖고 말하기는 매우 어렵다"며 "많은 가능성이 있고 앞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결과도 다양하다"고 말했다.
당초 3월 금리 인하에 베팅했던 시장은 5월 인하 가능성을 지워버리고 이제 6~7월 인하를 점치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이날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은 Fed가 3월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을 91% 넘게 반영하고 있다. 5월 동결 가능성도 67%가 넘는다. 반면 Fed가 6월 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할 가능성은 한 달 전 16%대에서 현재 54%대, 7월 내릴 가능성은 2%대에서 34%대로 급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