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한기자
오는 4월10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서울시 일부 지역에서 ‘김건희를 즉각 수사하라’는 내용의 정당 현수막이 강제 철거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송파구청과 서대문구청은 ‘특정인에 대한 비방 금지’라는 서울시 조례를 철거의 근거로 내세웠으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18일 서울시의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 산업진흥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안이 의결됐다. 해당 법안은 국민의힘 소속 허훈 시의원이 발의했는데, 형법 제309조(명예훼손)·제311조(모욕)에 따라 정당 현수막에 특정인의 실명을 표시 비방하거나 모욕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허 시의원은 입법 취지에 대해 “특정인은 모든 공인을 포함하는 내용이다. 너무 도가 지나치다”며 “대통령, 장관 등 실명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방하는 것은 자제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례가 공포되자 일부 구청은 자체 판단으로 행정처분에 돌입했다. 지난 8일 오전 송파구청은 진보당에 현수막 자진 철거를 요구했고, 이를 거부하자 오후 3시께 현수막을 강제 수거했다.
송파구 관계자는 “정치적인 것을 따지는 것이 아니다. 조례대로, 원칙대로 하고 있다”며 “주민들의 민원이 쏟아진다. 이제 눈살 찌푸리게 하는 현수막은 그만 걸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대문구청도 지난 12일 진보당 현수막을 강제 철거했다. 특정인 실명을 표시해 비방·모욕했다는 동일한 이유였다.
일각에선 이 같은 서울시 조례가 명예훼손과 모욕죄를 과잉해석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헌법재판소는 1999년 6월 명예훼손 여부를 판단할 때 공인·사인인지, 공적 사안·사적 사안인지 여부에 따라 기준에 차이가 있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2002년 1월 명시적으로 공적 인물과 공적 사안이라는 법리를 도입했다. 일반적으로 공직자에 대한 감시·비판·견제 내용은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써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것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아니면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김건희를 수사하라'는 문구 자체가 명예훼손·모욕이라는 것에 동의가 안 된다”며 “특검법이 논의되는 상황에서 정당에서 정치적 구호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주장이다. 구청에서 법을 너무 엄격하게 해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수막 내용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목된다. 진보당 현수막은 서울 25개 구에 모두 걸려있지만 현재 2개 구에서만 조례를 적용해 강제 철거하고 있다. 행정처분이 제각각 이뤄진다면 정치적 목적을 의심받거나 과도한 규제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 조례에 따르는 것이므로 공통으로 적용되는 게 맞다고 판단된다"고 밝혔지만, 현수막 철거 권한은 자치구가 갖고 있다.
진보당은 17일 서울행정법원에 송파구청·서대문구청을 상대로 정당 현수막 강제 철거 취소 소송을 냈다. 윤희숙 진보당 상임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구청이 기준도 없이, 비상식적으로 현수막을 철거했다. 명백한 법치주의 위반이고, 정당 업무 방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