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완전정복](19)'안전지킴이' 분리막, 전고체 시대에도 살아남을 수 있나

편집자주지금은 배터리 시대입니다. 휴대폰·노트북·전기자동차 등 거의 모든 곳에 배터리가 있습니다. [배터리 완전정복]은 배터리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일반 독자, 학생, 배터리 산업과 관련 기업에 관심을 가진 투자자들에게 배터리의 기본과 생태계, 기업 정보, 산업 흐름과 전망을 알기 쉽게 전달하기 위해 만든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전해질과 함께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수혜주로 꼽히는 것이 분리막(seperator)이다. 두 품목은 IRA에서 '배터리 부품'으로 분류됐다. 전기차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북미에서 생산 또는 조립한 배터리 부품의 비율이 2024년 기준으로 60%를 넘어야 한다. 이 비율은 2029년에 100%까지 높아진다. 또 해외 우려 기관(FEOC)에 해당하는 중국 기업의 분리막을 사용하면 당장 2024년부터 보조금을 받을 수 없다.(배터리완전정복 18회 참조)

그동안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분리막 시장에서 중국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70%에 달했다. 국내 배터리 3사 역시 중국산을 많이 썼다. 하지만 앞으로 상황이 달라질 전망이다. 중국산 분리막 사용이 제한되면서 그 자리를 국산이 대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국내 분리막 기업들은 미국에서 직접 생산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향후 도래할 전고체 배터리는 분리막의 위협 요인이다. 전고체 배터리는 액체 전해질을 고체 전해질로 대체하기 때문에 분리막이 필요 없다. 하지만 전고체 배터리가 상용화되더라도 높은 가격으로 인해 하이엔드 전기차 중심으로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여전히 대부분의 전기차에는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가 탑재될 것으로 보인다. 분리막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란 얘기다.

닿을 듯 말듯…분리막의 기술

분리막(seperator)은 양극과 음극 사이에서 배터리의 안전을 책임지는 핵심 소재다. 양극과 음극이 직접 닿으면 단락(쇼트)으로 인해 화재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분리막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1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 보다 작은 크기의 미세한 기공(pore)을 갖고 있다. 이 구멍을 통해 리튬이온이 이동하게 된다. 기공은 많을수록 좋지만 너무 많으면 물리적 강도가 떨어진다.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의 분리막은 약 40%의 기공도를 유지하고 있다. 기공의 크기는 들쭉날쭉하지 않고 균일해야 배터리가 제대로 된 성능을 낼 수 있다.

배터리의 내부 온도가 일정 수준(100~140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이 기공이 막혀(Shut down) 리튬이온의 이동을 차단하게 된다. 이는 배터리의 과충전과 열폭주(thermal runaway)를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분리막이 너무 잘 녹아내려도 안 된다. 열폭주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분리막이 제대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전기가 통하지 않는 절연성 물질이어야 한다. 분리막의 두께는 얇을수록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를 향상시킬 수 있다. 그만큼 양극재를 더 많이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리튬 이온 배터리에 사용되는 분리막의 두께는 20㎛ 이하이다.

분리막의 소재로는 고분자 물질이 사용된다. 폴리에틸렌(polyethylene·PE)과 폴리프로필렌(polypropylene·PP)이 주로 쓰인다.

분리막은 제조 공정에 따라 건식 분리막과 습식 분리막으로 나뉜다. 건식은 기계적인 힘으로 필름 원단을 한 방향으로 잡아당겨(1축 연신) 기공을 만드는 방식이다. 제조 공정이 간단하지만 기공 크기가 불균형하다는 단점이 있다.

습식 분리막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고온고압에서 PE, PP에 파라핀 오일(왁스)을 넣어 반죽한 뒤 압출해 시트(Sheet) 형태로 만든다. 시트를 양방향으로 당긴 후(2축 연신) 천천히 식히면 상분리 현상이 일어난다. 이때 시트를 휘발성 용매에 노출하면 오일이 제거되면서 구멍(기공)이 남게 된다.

습식 분리막은 제조 공정이 복잡하고 비싸지만 더 얇고 균일한 기공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건식 분리막은 용매 공정이 없어 친환경적이고 기계적 안정성이 우수하다.

과거 분리막으로 필름 소재 하나만 사용했지만 최근엔 세라믹 소재의 코팅제를 사용해 성능을 강화하고 있다. 기본 필름의 소재는 거의 유사하기 때문에 코팅 소재에 따라 분리막의 상품성과 가격이 좌우된다.

2030년 28조원 시장…中 기업이 주도

전기차의 확대와 함께 리튬이온배터리 분리막 시장도 성장할 전망이다. 배터리셀에서 분리막의 원가 비중은 약 15% 안팎이다. 배터리에서 1기가와트시(GWh)당 1100만~1300만㎡의 분리막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를 토대로 교보증권은 2023년 기준 분리막 사용량은 전년도보다 37.4% 증가한 83.3억㎡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시장조사업체인 SNE리서치는 전 세계 분리막 시장 규모가 금액 기준으로 2022년 75억달러(약 9조8500억원)에서 2030년 219억달러(약 28조7800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2023년 3월)

분리막은 과거 일본 기업들이 강세를 보였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중국 전기차 시장이 급속히 확대되면서 중국 기업들이 생산량을 크게 늘렸다. 규모의 경제를 달성한 중국 기업들은 가격을 앞세워 점유율을 확대해 나갔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2년 생산량 기준으로 중국이 전 세계 시장의 약 68%를 차지하고 있다. 이어 한국이 16%, 일본이 13%의 순이다.

대표적인 중국 분리막 기업으로는 중국의 상해은첩(SEMCORP), 선전시니어(Shenzhen Senior), 시노마(Sinoma) 등이 있다.

상해은첩(SEMCORP)은 2010년 4월 중국 상하이에서 자본금 3.9억위안으로 설립됐다. 2017년 창신신소재가 상해은첩을 인수한 이후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규모를 키웠다. 2022년 기준 전 세계 분리막 생산량의 24.4%를 차지하며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 CATL과 한국 LG에너지솔루션에 분리막을 공급하고 있다.

일본 기업으로는 아사히카세이, 도레이가 있다. 아사히카세이는 1990년대부터 이차전지용 분리막 생산을 시작했다. 2009년 4월부터 아사히카세이 E-머티리얼즈 부문에서 분리막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2015년에는 미국 분리막 기업인 셀가드의 모회사 폴리포어인터내셔널(Polypore International Inc, PPO)을 32억달러에 인수하면서 사업을 확장했다. 아사히카세이는 한국 평택에도 분리막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 기업으로는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 더블유씨피 등이 있다. 최근엔 LG화학이 2021년 분리막 사업에 재진출해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SKIET는 2019년 4월 SK이노베이션의 분리막 사업부가 물적분할해 설립한 회사다. SK이노베이션은 2004년(당시 SK에너지) 처음으로 리튬이온 분리막 개발에 성공하면서 이 분야에 진출했다. SKIET는 2022년 생산량 기준 전 세계 6.6%의 점유율 기록하고 있으며 국내 최대 분리막 기업이다.

국내 2위 분리막 기업인 더블유씨피는 2016년 10월 충북 청주에서 설립했다. 삼성전자 출신인 최원근 대표가 2005년 일본에 설립한 더블유스코프(W-SCOPE)가 모회사다. 더블유스코프는 일본 도쿄증권거래소 상장사다. 더블유스코프코리아는 IT용 소형 분리막을, 더블유씨피는 전기차용 분리막을 생산하고 있다.

IRA 덕 좀 볼까...韓 기업들 북미 진출 검토

분리막은 배터리의 안전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 때문에 검증 과정이 까다롭고 진입 장벽 또한 높다. 전기차용의 경우 분리막 공급 업체 변경을 위해서는 완성차 업체의 승인까지 4년여의 기간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배터리셀 기업들도 주요 분리막 업체를 선정해 안정적으로 공급받고 있다.

현재 삼성SDI는 더블유씨피로부터 절반 이상의 분리막을 공급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온은 주로 SKIET로부터 분리막을 제공받는다. LG에너지솔루션의 거래처는 중국의 상해은첩, 선전시니어, 일본의 아사히카세이, 도레이로 분산돼 있다.

하지만 앞으로 이러한 구도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변화의 시발점은 미국 IRA다. IRA에서 분리막은 '배터리 부품'으로 분류됐다. IRA 규정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북미에서 제조 또는 조립한 배터리 부품의 비중이 60% 이상이어야 정부로부터 전기차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이 비중은 2026년에는 70%로 상향된다. 이후 매년 10%씩 높아진다. 2029년에는 100% 북미에서 제조 또는 조립한 부품을 써야 한다.

2023년 12월 미국 정부는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을 해외 우려국으로 분류했다. 또 우려국에 위치해 있거나 우려국 정부가 소유, 통제, 지시하는 기업은 해외 우려 기관(FEOC)으로 지정했다. 사실상 거의 모든 중국 기업이 해당한다. 2024년부터 배터리 부품을 FEOC에서 공급받으면 전기차 보조금을 받을 수 없다.

이에 따라 미국 전기차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기업들은 중국산 대신 한국이나 일본 기업이 제조한 분리막을 사용할 가능성이 커졌다. 실제로 FEOC 규정이 적용되면서 2024년 1월부터 보조금 대상 전기차 차종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 핵심 광물의 경우에는 2025년부터 이 규정이 적용된다.

분리막 제조 기업들은 북미에 공장을 건설할 경우 첨단 제조생산 세액공제(AMPC)를 받을 수도 있다. 미 재무부가 2023년 12월 발표한 IRA 가이드라인에서는 AMPC를 받을 수 있는 제품 목록에 분리막과 전해액을 포함했다. 기존에는 배터리 셀과 모듈만 킬로와트시(KWh)당 35달러와 10달러씩 세액을 공제받을 수 있었다.

앞으로 미국 배터리 분리막 시장에서 중국을 대체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 기업 간 치열한 각축전이 예상된다. 국내 분리막 기업들은 북미 시장 진출을 서두를 것으로 보인다. SKIET는 그동안 국내 증평과 청주, 중국 창저우, 폴란드 실롱스크 등에서 분리막을 생산했다. 배터리 업계에서는 SKIET가 2024년 초 북미 분리막 공장 신설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가 생산한 분리막

더블유씨피는 국내 충주에서 분리막을 생산하고 있다. 이 회사는 삼성SDI의 배터리 생산기지가 있는 헝가리에 7억유로를 투자해 연산 12억㎡ 규모의 분리막 공장을 신설할 계획이다. 북미 진출도 검토하고 있다.

배터리 업계에서는 6년 만에 분리막 사업에 재진출한 LG화학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LG화학은 2021년 10월부터 헝가리에서 일본 도레이와 합작법인을 짓고 있다. LG화학은 2028년까지 연간 8억㎡의 생산 능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LG화학은 2015년 도레이에 분리막 사업을 매각한 바 있다. LG화학도 북미에 분리막 공장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

전고체 시대, 분리막의 운명은?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확대에 따라 분리막 시장도 함께 커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한 가지 복병이 있다. 바로 '꿈의 배터리'라고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의 상용화다. 전고체 배터리는 화재 위험성을 낮추기 위해 액체 전해질을 고체 전해질로 바꾼 배터리로 분리막을 사용하지 않는다. 전고체 배터리 사용이 확대되면 분리막의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다수의 전문가는 전고체 배터리가 상용화되더라도 비싼 가격으로 인해 프리미엄급 시장으로 제한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기술개발의 어려움, 가격 경쟁력 등으로 인해 시장이 급격히 커지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다.

리튬이온 배터리에 쓰이는 액체 전해질의 글로벌 평균 가격은 2023년 기준 ㎏당 9달러 수준이다. 황화물계 고체 전해질의 주원료인 황화리튬(LiS2)의 평균 가격은 ㎏당 1500~2000달러에 달한다. 대량 생산 체계를 갖추더라도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 수준까지 가격이 내려가기에는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다.

SNE리서치는 2030년 기준 전고체 배터리의 예상 점유율은 4% 수준에 머물 것으로 예상했다.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 이후에도 분리막의 입지는 크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참고문헌
매일경제, '이차전지 분리막' 다시 뛰어든 LG화학, 2021.10.27SNE 리서치, LIB 4대 부재 SCM 분석 및 시장 전망 (~’30) 리포트, 2023.3.2SNE리서치, 분리막 기획 칼럼③ 분리막의 미래, 2023.7.10한국무역협회, 미국IRA 시행지침이 우리나라 배터리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 2023.9.6교보증권, 잠재력이 기대되는 분리막, 2024.1.2

산업IT부 강희종 기자 mindle@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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