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희기자
아르헨티나의 하비에르 밀레이 신임 대통령이 규제 완화와 민영화를 골자로 하는 경제개혁 방안을 내놓자 이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밤늦은 시간까지 '냄비시위'를 벌였다. '카세롤라소(cacerolazo)'라고 불리는 냄비 등 주방기구를 두드리는 시위는 아르헨티나 등 남미 특유의 시위 방식이다.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시민들이 냄비를 두드리는 '카세롤라소'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20일(현지시간) 주요 외신에 따르면 밀레이 대통령은 이날 정부 규제를 완화하고 국영 기업의 민영화를 허용하는 등의 경제 개혁안을 발표했다. 밀레이 대통령은 "아르헨티나 경제 복원의 기반을 마련하고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며 300개 이상의 규제를 철폐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날 철폐 대상으로 꼽힌 규제에는 임대료 제한과 국영기업의 민영화 방지 관련 규제가 포함됐다. 밀레이 대통령은 '실질적 일자리 창출을 위한 과정을 촉진하기 위한 노동법 현대화'를 선언하는가 하면 관광산업과 위성 인터넷 서비스, 의약품, 와인생산, 무역 등 다방면에 걸쳐 여러 규제를 철폐 혹은 완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밀레이는 "의회의 임시 회기가 소집될 것"이라며 "개혁을 위해 법안 패키지를 의회로 보내겠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국영기업의 민영화 방지 규제와 임대료 제한의 폐지 외에도 축구 클럽의 유한회사 전환 허용, 국영 아르헨티나 항공 지분의 매도 허용 등이 포함될 예정이다.
지난 10일 취임한 밀레이 대통령은 이 같은 고강도 개혁을 통해 아르헨티나의 경제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1920년대 세계 최고의 강대국이었던 아르헨티나는 지난 100년 동안 적자 예산이라는 한 가지 원인에서 파생된 일련의 위기를 겪었다"며 "국내총생산(GDP)의 15%에 달하는 누적 적자, 세계에서 가장 높은 조세 부담, 중앙은행의 준비금 부족, 신용 신뢰 파괴, 무분별한 통화 발행, 연간 1만5천%의 인플레이션 위기 등 역사상 최악의 유산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이미지출처=연합뉴스]
하지만 이 같은 방침이 발표된 날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이에 반대하는 수천 명의 시민들이 거리에 나서 심야에 냄비를 두드리는 '카세롤라소' 시위를 통해 대통령의 퇴진을 주장하고 나섰다. 스페인어로 냄비를 뜻하는 '카세롤라'(cacerola)에 '때리다'라는 의미의 접미사 'azo'를 결합한 말이다.
이날 저녁 9시께 밀레이 대통령이 관련 방침을 발표하자 주민들은 길거리뿐만 아니라 집 창문과 발코니로 나와 냄비와 주방 도구를 두드리며 "밀레이 퇴진"을 외쳤다. 거리로 나온 시위대는 국기를 흔들기도 하며 대통령궁 앞 마요 광장까지 행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