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2도]차진우 방해한 규칙…장애인 인권 위해 필요해

경찰 조사 등에서 정신·언어 어려움 있는 경우
의사소통 도와줄 보조인 신청 등 절차 지켜야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에서 차진우(정우성)는 경찰에 연행된다. 혐의는 미성년자 약취·유인. 경찰은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고 끌고 간다. 차진우는 영문을 몰라서 정신이 얼떨떨하다. 청각장애인이다. 어떤 오해가 생겼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경찰서로 이동한 뒤도 다르지 않다. 수첩에 '필담 가능!'이라 쓰고 대화를 요청하나 알아듣기 힘든 말만 돌아온다.

"인권 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 규칙 제75조 정신적으로나 언어에 어려움이 있는 장애인을 조사할 때는 의사소통이 가능한 보조인을 참여시켜야 한다고요!"

하염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차진우는 초조해한다. 정모은(신현빈)과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이 한참 지나버렸다. 답답한 마음에 벽시계를 쳐다보다 책상을 힘껏 두들기기 시작한다. '쾅쾅쾅!'

눈과 귀를 닫은 형사를 비난할 수는 없다. 정해진 절차를 충실히 따라서다. 애초 실종자로 신고된 미성년자의 진술까지 청취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보조인 참여를 중시하는 경찰관 직무 규칙도 꼭 필요한 절차다. 이 법칙은 2015년 폐지됐다가 2021년 마련된 인권 보호 수사 규칙(제60조)에 다시 명시됐다.

'청각 및 언어 장애인이나 그 밖에 의사소통이 어려운 장애인을 조사하는 경우 수화ㆍ문자 통역을 제공하거나 의사소통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을 참여시켜야 한다. 장애인인 피의자에게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의 법률구조 신청에 대하여 안내해 준다.'

규칙을 지키지 않아 인권 문제로 다뤄진 사건이 있다. 2013년 서울의 한 고등학교 특수학급에 재학 중이던 지적장애인 2급 김모 군은 절도 혐의를 조사받는 과정에서 강압수사로 인권을 침해당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 경찰은 김 군을 심야에 조사하면서 보호자의 동석을 막았다. 현장 조사에서 두 손을 수갑으로 묶었고, 파출소와 순찰차에서 욕설하며 폭행도 행사했다. 인권위는 소속 경찰관 세 명에 대해 경고·주의 조치할 것을 해당 경찰서장에게 권고했다. 김 군은 기소유예 처분이 내려지자 강압수사로 인한 허위 자백을 기초로 한 결과라며 재조사를 요구했다.

인권을 신경 써야 할 경찰이 장애인의 그것을 침해한 행위는 중대한 과실이다. 장애 특성을 보장하는 법률이 강화되는 오늘날은 더욱 그렇다. 지난 1월부터 시행되는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 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 대표적 예. 제26조 '사법ㆍ행정절차 및 서비스 제공에 있어서의 차별금지'에는 다음과 같이 명시됐다.

'사법기관은 사건관계인에 대하여 의사소통이나 의사 표현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그 장애인에게 형사사법 절차에서 조력을 받을 수 있음과 그 구체적인 조력의 내용을 알려주어야 한다. 이 경우 사법기관은 해당 장애인이 형사사법 절차에서 조력을 받기를 신청하면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하여서는 아니 되며, 그에 필요한 조치를 마련하여야 한다.'

'사랑한다고 말해줘'가 차진우의 답답한 심경을 강조하려다 자칫 올바른 법률과 규칙을 오해하게 만들지 않을까 걱정이 든다. 물론 이보다 중요한 건 여러 번에 걸쳐 다뤄지는 장애와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다. 예컨대 법원이 경찰에서 이뤄진 허위 자백을 근거로 판결한다면 죄를 저지르지 않은 장애인은 억울하게 형을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수사와 재판 분위기부터 상식과 인권에 맞게 흘러가야 한다.

문화스포츠팀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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