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현지기자
“새 법이 시행되면 금융사들은 연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에게 대출을 안 해줄 텐데, 그러면 돈 빌릴 데 없는 서민들만 더 힘들어지는 꼴이죠.”
오는 8일 국회 본회의 통과가 예상되는 ‘개인금융채권의 관리 및 개인금융채무자의 보호에 관한 법률(개인채무자보호법)’을 놓고 우려의 목소리가 들린다. ‘채무자 보호’라는 이름표를 달았지만, 오히려 돈을 빌리려는 서민을 어려운 처지로 내몰 수 있는 법안이라는 지적이다.
개인채무자보호법의 핵심은 개인 채무자에게 채무조정·추심중지 요청 권한을 주고 금융사가 연체 가산이자를 부과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바꿔 말해 채무자가 돈을 갚지 않더라도 금융사는 추심·연체 이자를 부과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수익성을 추구하는 금융사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연체 가능성이 높은 서민들에게는 대출 문턱을 더 올리려 할 것이다. 대출 영업 자체를 중단하는 곳도 생겨날 수 있다. 1, 2금융권이나 대부업에서 밀려난 취약차주들은 불법사금융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번번이 파행하던 거대 양당은 간만에 ‘일심동체’가 됐다. 소관 상임위인 국회 정무위는 지난 30일 전체회의를 열어 단 23분 만에 이 법안을 통과시켰다. 업계 혼란, 취약계층 피해가 예상된다는 업계·학계의 지적이 무색하게 논의 과정엔 어떤 반론도 제기되지 않았다. 제정법 추진 시 요구되는 공청회도 여야 합의에 따라 생략됐다. 여야 이견이 없는 만큼 이후 법사위와 본회의 통과도 확실시된다. 일각에서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서민 표를 의식한 것 아니겠냐”는 비판도 들린다.
고금리·경기둔화가 장기화하고 있는 만큼 연체 채무자를 과도한 추심·연체 부담으로부터 보호하는 법안은 필요하다. 하지만 부작용에 대한 검토 없이 법안을 통과시킨다면 이후 막대한 입법비용 청구서를 받아보게 될 것이다. “문제가 있으면 그때 가서 개정하면 된다”는 한 국회의원의 말은 무책임하게 들린다. 입법 취지에 역행하는 결과를 맞기 전, 법 조항에 대한 세심한 검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