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다수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 똑 부러지는 답을 내놓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개혁 공감대는 있지만, 각론에 들어가면 백가쟁명이다. 큰 방향은 분명하다. 개혁의 본질은 더 많이 내고 덜 받는 것이다. 우리보다 앞서 국민연금 제도를 도입한 나라들이 모두 겪어 왔던 길이다. 우리라고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건강보험료 문제도 조용하지는 않다. 퇴직자들의 불만이 크다. 직장 가입자에서 지역 가입자로 전환되면서 보험료가 오르기 때문이다. 소득에만 부과하던 것과 달리 자산과 소득 모두에 부과하는 방식으로 바뀌다 보니 퇴직자들이 느끼는 부담이 만만치 않다.
건보료 문제에 대한 해법도 그리 쉽지 않다. 인구 구조상 건보료가 더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55~74년생까지의 1차와 2차 베이비 붐 세대가 1600만명이 넘어 전체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다. 의료비는 사망 전 5~10년 사이에 평생 의료비의 절반 이상을 사용한다. 특히 75세 이후 후기 고령기에 집중적으로 사용한다. 베이비 붐 세대 맨 앞자리에 있는 55년생이 아직도 75세가 되질 않았다. 55년생부터 후기 고령기에 접어들기 시작하면 아마 지금보다도 건보 재정은 급격히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 한번 상상해 보라. 20년간에 걸쳐 75세 이상 후기 고령기에 접어드는 인구가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라는 현실을. 국민연금도 국민연금이지만 국민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건보 재정 문제는 절대 간단히 볼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엄청난 수학적 계산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산수 수준에서 예견할 수 있는 문제이다.
만일 재정이 고갈되면 어떻게 될까. 이것도 다른 나라가 겪은 과정을 우리도 따르게 될 소지가 크다. 즉, 지금 공무원연금이나 군인연금과 같은 지역연금의 부족분을 국민 세금, 즉 재정으로 메워 주듯이 나중에는 규모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에는 다른 나라처럼 재정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선거철이 다가오면 정치인들은 수많은 약속을 한다. 당연히 복지 약속은 선거철의 단골 메뉴이다. 더 많은 걸 약속하지만 실제는 그 약속을 지킬 돈이 부족할 가능성이 높다. 현실적인 사람이라면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는 쪽에 베팅하는 게 더 나은 의사결정이 될 수 있다. 정치인의 약속을 믿고 기다릴 것인지, 믿지 않고 스스로 자구 노력을 해야 할지 선택은 각자의 몫이지만 필자라면 아마도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지금 전 세계는 연금전쟁 중이다. 적지 않은 나라가 연금 개혁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선진국의 경우 2차 세계 대전 이후 태어난 베이비 붐 세대가 2010년 이후 고령층에 대규모로 편입되면서 기존 연금 제도의 틀이 흔들리고 있다. 인구 대역전이 일어나면서 돈을 내야 할 사람은 적어지는데, 받아야 할 사람은 많아지다 보니 각국이 연금 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 포르투갈, 이탈리아, 독일, 러시아 등 국가마다 조금씩 사정은 다르지만 모두 연금 개혁으로 사회적 갈등을 빚고 있다. 우리나라도 곧 시작이다. 아니 이미 시작됐다. 연금과 건보의 재정 문제는 사회적으로 큰 물줄기의 방향이 바뀌는 것이다. 더 많은 것을 제공해야 하고 더 많은 사람이 필요로 하는 시기에 정작 해 줄 수 있는 밑천이 줄어드는 것이다. 너무 차갑고 원칙적인 얘기일 수 있지만 현실이 말하는 바는 자기 스스로 더 많이 책임지고 더 많이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건 미래에셋 투자와연금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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