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기자
오스트리아 정부가 세계 2차 대전을 일으킨 전범 아돌프 히틀러의 생가를 경찰서로 바꾸기로 결정했지만 이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19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히틀러 생가가 있는 브라우나우암인(Braunau am Inn)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히틀러 생가가 경찰서가 아니라 역사를 돌아보고 교훈을 줄 수 있는 박물관 등의 장소로 활용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앞서 오스트리아 정부는 독일과 국경을 맞댄 오스트리아 북부 오버외스터라이히주에 위치한 히틀러 생가 건물을 2017년 81만2000유로(약 11억원)를 들여 매입했다.
이후 정부는 '아돌프 히틀러 생가의 역사적으로 올바른 처리를 위한 위원회'를 만들어 이 건물을 철거하거나 박물관이나 연구소 등을 건립하는 등의 여러 가지 활용 방안에 대해 수년간 고민해 왔다. 결국 정부는 장고 끝에 2019년 이 집을 경찰서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위원회는 건물 철거에 반대하면서 "오스트리아는 이 장소가 지닌 역사를 부인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박물관 등 역사적 의미를 지닌 장소로 전환될 경우 계속 히틀러를 연상시킬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이에 "건물이 지닌 인지도와 상징적 힘을 없애기 위한 충분한 건축적인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에 정부는 히틀러 생가를 지역 경찰서로 바꾸고 건물 두 채를 새로 지어 경찰관을 위한 인권 교육장으로 활용하겠다는 방안을 밝혔다. 지난달부터 본격적인 개조 공사가 시작됐지만, 마을 주민들 사이에선 이를 두고 장소가 지닌 역사적 의미를 지우는 처사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역사 교사인 아네테 포머(32)는 NYT에 자신을 비롯한 마을 주민 다수는 해당 건물이 나치 활동에 오스트리아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탐구하는 박물관이나 전시 공간이 되길 희망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 장소는 어떻게 히틀러라는 사람이 만들어질 수 있었는지에 관한 공간이어야 했다"며 "악마의 집이 아닌 그저 한 아이가 태어난 집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아이가 나중에 어떻게 됐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옳은 일"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과거 장애인 복지관으로 쓰였던 이 건물의 용도를 되살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1972년 당시 민간 소유였던 이 건물이 네오나치 추종자들의 근거지로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 건물을 직접 주인으로부터 임대해 관리해왔다. 그 후 이 건물은 1977년부터 2011년까지 정부 관리하에 장애인 복지 시설로 활용됐다.
지역 역사가인 플로리안 코탄코는 NYT에 "많은 주민들은 건물이 다시 장애인 복지 단체를 위한 장소로 쓰이는 것을 더 원한다"며 "그것이 장애인을 박해했던 히틀러의 뜻에 반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경찰서로 바꾸는 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히틀러와 네오나치 추종자들이 인근에서 불법 행위를 하다가 체포돼 경찰서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돌프 히틀러는 1889년 이 건물 맨 위층에서 태어났다. 얼마 후 히틀러 가족은 독일 도나우 강변의 린츠로 이사해 실제로 히틀러가 이곳에 머문 기간은 얼마 되지 않지만 이후 히틀러 생가는 일종의 성지이자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현재 히틀러 생가 앞에는 1989년 브라우나우암인 시장이 설치한 "평화,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 파시즘이 다시 도래하지 않도록. 수백만 명의 죽음은 그 경고"라는 문구를 새긴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 비석은 마우타우젠 강제 수용소 부지에서 가져온 돌이다. NYT는 이곳에는 주로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있지만, 히틀러의 생일 등에는 네오나치 추종자들이 찾아와 초나 화환을 놓기도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