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동우기자
정부가 국가 재정 건전성 강화를 위해 추진 중인 재정준칙 법제화가 사실상 연내 도입 가능성이 희박해지고 있다. 정부가 재정의 안정적인 관리를 위해 지난해 9월 재정준칙을 담은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야당과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1년 2개월째 논의가 지연되면서다. 정기국회가 종료하는 다음 달까지 개정안 통과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차기 국회가 시작하는 내년 하반기까지 법안 처리가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0일 국제통화기금(IMF)은 '2023년 한국 연례협의 보고서'에서 재정준칙 법제화가 선행되지 않으면 향후 고려화에 따른 노년부양비 급증을 시작으로 중앙정부 채무가 빠르게 증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저성장 기조를 고려하면 경제구조 개혁과 재정지출의 안전장치가 시급하다는 설명이다.
IMF는 한국 정부의 재정 정상화를 위한 내년도 예산안 편성 및 재정준칙 도입 등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한편으로 현행 연금제도를 지속할 경우 2075년 중앙정부 채무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200% 수준까지 치솟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급격한 고령화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수급 개시 연령을 2033년부터 65세로 늦추는 개혁은 물론 이를 뒷받침하는 재정준칙의 법제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재정법 개정안에 담긴 재정준칙의 핵심은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의무적으로 GDP의 3% 이내로 관리하는 것이다. 만일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60%를 초과할 경우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2% 이내로 제한한다. 이런 내용의 재정준칙을 법제화하면 정부의 무분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지출을 효율적으로 막을 수 있다. 문재인 정부 당시인 2020년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112조원으로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과도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올해 1~9월 누적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70조6000억원으로 3년 전과 비교해 40조원 규모가 줄었지만, 정부의 연간 적자 전망치(-58조2000억원)를 12조원가량 상회했다.
문제는 글로벌 대외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당장 내년 국세수입이 정부 전망치보다 더 줄어 재정 악화가 가중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는 점이다. 최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는 '2024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검토보고'에서 내년 국세수입 전망 적정성을 검토할 것을 권고했다. 정부가 지난 8월 말 공개한 내년도 예산안 발표 이후 4개월 만에 IMF를 비롯한 국제기관들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하향 조정하면서 세수 확보가 예상치를 하회할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앞서 정부는 내년도 국세수입이 367조3750억원으로 올해 본예산(400조4570억원) 대비 33조820억원(8.3%)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수 부족과 저성장 국면이 본격화할 경우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정부의 재정 확대 요구에 보다 힘이 실릴 수도 있다. 야당은 재정준칙 법제화에 앞서 경기부양을 위한 추경 편성을 여전히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21대 국회가 종료되는 내년 5월29일까지 국가재정법 개정안이 통과하지 못할 경우 법안은 자동폐기 된다. 정부 관계자는 "다음 달 정기 국회에서 재정준칙을 위한 관련법 개정이 통과될 수 있도록 여야 협조에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