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여가부 복지예산, 현장 목소리 듣고 다시 살펴야

부정 수급, 중복 사업 이유로 사업 폐지
가정폭력 등 상담소 대폭 축소 및 통합
청소년·여성 현장 지원 예산 증액해야

"학교폭력, 가정폭력 문제가 영영 뒷전으로 밀릴까봐 걱정입니다."

여성가족부 내년 예산 감축안이 알려진 뒤 광역시의 청소년자립지원관 상담사가 기자에게 14일 한 말이다. 여성가족부는 내년 청소년 정책 예산을 올해 대비 173억원 감축했다. 학교폭력 예방 프로그램, 근로청소년 부당처우 해소 등 청소년 권익 보호 사업 예산이 주로 잘려 나갔다. 청소년 예산과 함께, 여성폭력 방지 예산도 142억원 칼질당했다. 가정폭력상담소와 성매매 피해자 지원 사업이 위축되게 생겼다.

여가부는 부정수급, 중복사업 등을 사업 폐지의 이유로 밝혔는데, 세부 항목을 살펴보니 부정수급과 직접 관련 없어도 뭉텅이로 삭감된 사례도 여럿 있었다. 청소년자립지원관 관련 예산이 대표적이다. 여가부가 고용노동부 등과 사업이 중복된다는 이유로 예산을 줄인 ‘청소년 근로조건 보호’예산은 고용노동부 내년 예산안에서도 감액됐다. 이 바람에 여가부와 고용부를 합친 청소년 근로보호 사업 내년 예산 총액은 올해보다 반토막이 났다.

약자에 대한 복지 정책의 성패 여부는 섬세한 예산 설계에서 출발한다. 여가부 관계자들은 민간 단체 등을 통한 간접 지원을 줄이고 정부의 직접 지원을 늘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내년 예산 삭감으로 현재 전국 128개소인 상담소를 줄이고 인력 감축이 불가피하게 된 가정폭력피해자상담소의 경우, 2018년 39만건이던 상담 건수가 매년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에는 45만건에 달했다. 이 수치는 여전히 현장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수많은 피해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왜 이렇게 현장에 구멍을 숭숭 뚫는 예산안이 나왔을까. 정부의 내년도 예산 수립의 큰 틀이 민간단체와 관련한 보조금 삭감이고, 여가부도 여기에 기계적으로 맞춰서 민간기관에 위탁한 복지 사업 예산에 칼을 댔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온다.

약자 복지 정책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따라서 여가부의 복지 예산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숨은 현장의 목소리가 담겨야 한다. 정부 관료들이 사무실에서 복지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그에 맞춰 총예산 규모를 정하는 ‘탑다운(하향)’ 방식으로 예산안을 짜면 안 되는 분야가 복지 정책이다. 현재 국회가 정부 예산안 심사를 진행 중이다. 내년에 종료 대상이 된 복지 사업에 대해 바텀업(상향) 방식으로 다시 살펴보기를 바란다.

사회부 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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