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김현정특파원
애플 ‘아이폰15’의 중국 판매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22일 이른 아침 베이징 산리툰으로 이동하면서 여러 시나리오를 떠올렸다.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근무할 때 아이폰 사용을 금지시킨 전례로 봤을 때, 이날 집결한 사람들은 어딘가 눈치보며 위축 돼 있지 않을까. 인권이나 대만 독립 등 민감한 사안을 건드린 외국계 기업을 보이콧하던 기세에 비추면, 애플 앞에 선 청년들을 향한 질타의 목소리가 공존하지 않을까. 누군가 오성홍기(중국 국기)나 공산당기를 펼쳐들며 미국 브랜드의 추종자라 손가락질하고, 계란이라도 투척하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맹목적이라 여기는 중국의 애국심은 이날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도착한 현장은 꼬리를 물던 생각과는 사뭇 달랐다. 전 세계 애플팬들이 아이폰 새 모델이 출시될때 보여주는 예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매장 앞은 ‘축제’ 분위기였다. 카운트다운을 시작으로 수백여명이 환호했다. 첫 입장을 하고 싶어서 새벽 1시부터 줄을 서며 밤을 꼬박 샜다는 17세 남학생은 직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매장으로 들어섰다. 당당한 표정이었고, 관심을 즐기는 눈치였다. 취재 대상인 매장 직원들과 방문객들은 예상보다 쉽게 말문을 열었다. 화웨이에 대해 물어도, 애국심에 대해 물어도 선뜻 자신의 생각을 답했다.
10대에서 30대 언저리의 젊은 층 한정이긴 하지만, 아이폰은 중국 현지에서 완벽한 기호품으로 자리잡은 듯 하다. 세련되고 패셔너블한 브랜드 이미지를 소비하는 데에 딱히 눈치를 보지도, 국가에 미안해하지도 않았다. 좋으면 사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우리로치면 유튜버격인 왕홍(인터넷 인플루언스)들은 현장에서 아이폰15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하며, 화웨이에 손을 들어주는 모습도 보였다. 화려한 옷차림으로 현장을 촬영하며 ‘화웨이’를 외친 젊은 여성도 잠시 등장했지만, 매장 방문객들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임에는 틀림없지만, 이날 확인한 것은 모든 성향과 결정을 통제 받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적어도 시장에 출시된 민간 기업 제품에 대해서는 소비자의 판단이 최소한의 존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공무원의 아이폰 사용은 자제토록 하고, 대중에게 노출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포털에서는 되도록 아이폰이 덜 주목받을 수 있게 손을 쓰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사겠다는 사람은 말리지 못한다. 애국은 애국이고, 아이폰은 아이폰이라고 생각하는 젊은층에게 정부가 나서 훈수를 두지는 않는다.
그러한 관점에서 화웨이의 선전을 덮어놓고 ‘애국심’으로 해석하는 것은 시장을 파악하는 데에 잡음이 된다. 물론 2016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결정 당시 우리 기업이 받았던 압박과 고난을 떠올리면, 중국의 의사결정 과정이 합리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때의 망령에 사로잡혀 중국이 내놓은 모든 결과물을 싸잡아 무시하고 경시하는 태도 역시 합리적이라고 할 수 없다. 현실과 판단의 낙차 만큼 우리 전략의 오류가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