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반떼 29만원인데 포르셰 전기차 13만원'…차稅 개편 목소리 커진다

대통령실 "다른 기준으로 대체" 권고
논란의 시작은 전기차 때문…연 13만원
가격 기준 도입시 車회사들 유불리 달라지기도
가격 산정·친환경차 보급 등 문제 많아
美 ‘천차만별’ EU ‘CO2 배출량’
"다양한 기준 함께 적용해야"

정부가 배기량 기준인 자동차세를 차량 가격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즉, 지금까지는 배기량이 큰 차를 사면 세금을 많이 냈지만 앞으로는 비싼 차를 사면 세금을 더 내야 한다. 기존 10만원 가량의 세금만 내던 전기차 차주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가격을 보조할 다른 합리적인 기준도 제시해 ‘조세 저항’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 13일 대통령실은 ‘배기량 중심의 자동차 재산기준 개선’ 주제로 한 제4차 국민참여토론 결과를 발표했다. 토론 결과 총 투표수 1693표 중 1454표(86%)가 개선에 찬성했다.

찬성 이유로 ‘시대·환경 변화에 따라 합리적이고 공평한 세금 부과 필요성 등을 감안해야 한다’는 응답이 74%로 가장 많았다. 대통령실은 “배기량 기준은 자동차에 대한 공정과세 실현, 기술 발전 등을 고려해 차량가액 등 다른 기준으로 대체하거나 추가·보완하라”고 권고했다.

논쟁의 시작 ‘전기車’, 가격 상관없이 연 13만원 내

여기서 말하는 자동차세는 ‘소유분 자동차세’를 말한다. 자동차 관련 세금은 취득·보유·운행 단계에서 각각 부과된다. 보유하면서 계속 내야 하는 세금이 바로 소유분 자동차세다. 재산세와 환경오염부담금이라는 두 가지 성격을 가지고 있다. 2001년 헌법재판소는 자동차세에 대해 “자동차 소유 그 자체를 과세대상으로 해 재산세 성격이 강하지만 도로이용·파손에 대한 사용자부담금과 교통혼잡·대기오염을 발생시키는 행위에 대한 부담금 성격도 가지고 있다”고 판시했다.

현행 소유분 자동차세 과세 기준은 배기량이다. 과거에는 배기량이 높을수록 오염 물질 배출이 많고 차량 가격이 비쌌기 때문에 논란의 소지가 적었다.

하지만 전기차가 많아지면서 개편 목소리가 커졌다. 조세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2000만원대 기아 레이 EV와 2억원에 가까운 포르셰 전기차 타이칸까지 전기차는 모두 세금으로 13만원을 낸다. 가격이 10배 차이가 나는데 세금은 같다. 기아 레이 차주 입장에선 억울할 수 있다. 또 내연기관 자동차를 굴리고 있다면 전기차 세금 자체가 너무 적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갈무리]

예를 들어 1975만원짜리 아반떼 1.6 가솔린의 경우 연 29만820원의 자동차세를 낸다. 포르셰 전기차 타이칸 터보S는 가격이 2억3360만원이지만 배기량이 없어 자동차세를 13만원만 낸다. 비슷한 가격대인 레이 EV보다 세금을 2배 이상 내야 한다.

내연기관차량에도 현재 자동차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동차 업체들은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 자동차 엔진을 작게 만들면서 동시에 출력은 유지시키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덕분에 요즘은 배기량과 가격이 비례하지 않는다. 특히 인기 수입차는 가격은 비싸지만 엔진 배기량이 낮은 경우가 많다. 세수 부족 우려도 개편 논쟁에 불을 지피고 있다. 현행 기준을 유지하면서 전기차가 늘어난다면 세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가격 기준 도입 시 유불리 달라지는 車회사들

대통령실 발표를 보면 가장 많이 제시된 대안은 ‘차량 가액’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준이 도입된다면 소비자들의 차량 구매 패턴이 달라질 수 있다.

기존 배기량 기준으로 미국차는 동일한 차량 크기여도 상대적으로 자동차세를 많이 내고 유럽차는 적게 냈다. 가격 기준으로 바뀌면 미국차는 유리, 유럽차는 불리해진다.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배기량이 큰 자연흡기 엔진이 탑재된 차량을 많이 만든다. 미국은 짐을 많이 실을 수 있는 픽업트럭이나 머슬카(고출력을 내는 고성능 차량)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두 차량 모두 엔진의 순간출력(토크)이 중요하다. 토크가 클수록 차가 즉각 반응한다.반면 유럽 업체들은 환경규제 등을 이유로 엔진 크기를 줄여 배기량이 상대적으로 낮다. 대신 출력을 그대로 유지하는 ‘터보’ 기술을 주로 개발했다.

차량가격으로 개편해도 괜찮나

비싼 차를 산 사람에게 세금을 더 많이 받는다는 논리는 나무랄데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차량 가격을 어떻게 산정할 것인가란 질문을 하는 사람이 많다. 새차는 출고가를 표준으로 삼을 수 있다. 하지만 중고차는 다르다. 통일된 기준이 없어 차량 가치와 가격이 제각각이다.

또 전기차 보급을 늘리려는 정부 정책 방향과 부딪힐 수 있다. 정부는 2030년까지 전기차 보급대수를 420만대까지 늘린다고 공언했다. 거기에 매년 전기차 구매 시 보조금을 주는 등 친환경차 보급을 위한 제도가 많다.

하지만 자동차세를 가격으로 바꾸면 전기차 보급이 늦춰질 수 있다. 전기차가 비싸더라도 세부담이 적어 구매했던 소비자들이 마음을 바꿀 가능성이 크다. 제네시스 G80 전기차는 8281만원이다. 최고출력 성능이 비슷하며 같은 플랫폼으로 만든 G80 3.5 가솔린 터보의 가격은 6211만원이다.

2000만원 차이가 난다.자동차세 과세 목적 중 환경세적 성격과 고가차에 세금을 더 내도록 한다는 원칙이 충돌하는 것도 문제다. 차량이 오래될수록 가격은 내려간다. 하지만 노후화된 내연기관차량은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이 많아 환경 비용을 더 발생시킬 수 있다. 가격 기준만 가지고 과세할 경우 이 차량들에 대한 세부담이 오히려 줄어든다.

지프 그랜드 레로키 4xe의 엔진룸이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해외 사례 보니…美 ‘천차만별’ EU ‘CO2 배출량’

해외 여러 나라 사례를 살펴보면 미국은 주마다 다른 자동차세 기준을 가지고 있다. 차량당 가격이 정해진 ‘정액과세’를 하는 주가 26곳으로 가장 많다. 1년에 정해진 금액만 내면 차량 보유에 대해 다른 세금을 걷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텍사스주는 차량당 50.75달러, 펜실베니아주는 38달러로 정해져있다. 현재 우리 정부가 고려하고 있는 것처럼 차량 가격을 기준으로 부과하는 주는 7곳이다.

무게를 기준으로 하는 곳도 있다. 차가 무거울수록 도로 파손에 영향을 많이 끼쳐 이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전기차가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전기차는 무거운 배터리를 싣고 있어 내연기관차보다 무겁다. 대부분 전기차는 기계식 주차설비를 사용하지 못한다. 너무 무거워 기계가 버티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무게를 기준으로 자동차세를 매기는 주는 14곳이다.

유럽은 전기차가 유리하도록 자동차세 구조를 짰다. EU(유럽연합) 17개 국가의 경우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과세 기준으로 활용하고 있다.

전문가 “다양한 기준 함께 적용해야”

자동차세 개편이 필요하다면 한 가지 기준만 적용하기보다 다양한 기준을 함께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앞서 헌법재판소가 판시했듯 자동차세의 본래 목적인 재산세적 성격과 환경세적 성격이 모두 고려돼야 한다는 것이다.

배터리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전기차는 같은 모델 내연기관차보다 비싸다. 가격을 기준으로 자동차세를 정한다면 그 차액 이상을 전기차 가격에서 빼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기차주들이 돈을 더 써서 환경을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차의 경우 무게도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필헌 한국지방세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자동차세 개편 논의에 대한 소고’ 보고서에서 “자동차세의 재산세적 성격과 환경세적 성격을 모두 반영하는 단일 지표는 존재하기 어렵다”며 “가격기준과 CO2 배출량 기준이 서로 장단점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산업IT부 오규민 기자 moh011@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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