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미중 기술전쟁' 승자는 따로 있다…동남아·美우방 파고드는 中

[美 반도체법·IRA 1년]③
美 중국산 수입 비중 20년래 최저
中, 해외 공장 세워 '메이드 인 OO' 둔갑
美 우방과 中 교역만 견고해져
기술전쟁에 글로벌 GDP 5% 감소 예상
반도체 자급자족시 생산비 65% 뛰어
국제표준 분산시 기회비용은 연간 1조달러
WSJ "美 핵심 과학 발전도 늦어질 것"

미·중 디커플링(탈동조화)의 상징인 미국의 반도체지원법(CSA)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발효 1년이 지난 가운데, 미·중 교역 의존도가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강력한 대(對) 중국 봉쇄 정책을 통해 미·중 디커플링(탈동조화)이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중국이 미 우방국과 교역을 늘리면서 미국의 견제를 회피, 실질적인 미·중간 디커플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양국 경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디커플링을 밀어붙일 경우 글로벌 경제 규모가 5% 정도 줄어들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면서 일각에서는 미·중 디커플링에 관한 회의론도 제기되고 있다.

中, 대미 수출 줄었지만… 美 동맹과 교역은 견고

22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미·중 대립이 고조되면서 양국 간 교역 의존도가 줄어들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최근 미국 상무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중국이 올해 상반기 미 최대 수입국 지위에서 탈락해 '3위 수출국'으로 주저앉았다고 보도했다. 이 기간 미국의 중국 수입액은 2030억달러 정도로, 1년 전 2714억달러 대비 25% 줄었다. 기존 중국의 자리는 멕시코가 꿰찼다. 미국의 멕시코 제품 수입액은 전년(2239억달러) 대비 5.4% 늘어난 2360억달러로 가장 많은 상품을 수입했다. 캐나다에선 2106억달러로 멕시코 다음으로 많은 상품을 들여왔다.

미국의 중국산 제품 수입 비중은 20년래 최저 수준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첨단기술을 둘러싼 양국 간 갈등 심화, 기업들의 중국 의존도 축소, 공급망 변화 등 양국 정세 변화에 따라 수입량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은 지난 10여년 동안 미국의 최대 수입국 자리를 지켜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미 인구조사국 무역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올 상반기 미국의 상품 수입 비중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3.3%로 지난 2003년(12.1%) 이후 가장 낮았다. 연간 최고치였던 2017년(21.6%) 대비로는 8.3%포인트 줄었다.

수치상으로 보면 양국간 교역의 양태는 단절되는 분위기로 보인다. 그런데 실제 교역 양태를 심층적으로 살펴보면 교역 단절이 이뤄지기 보다는 기존보다 더 복잡하게 뒤얽히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8일 '미국은 중국과의 결별에 어떻게 실패했는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중국의 대미 직접 수출 규모가 줄어들고 있지만, 중국과 미 동맹국 간 무역 규모가 증가하고 있다고 짚었다. 사실상 중국이 미 동맹국을 통해 '메이드 인 차이나' 상표를 숨기고 동맹국 제품으로 둔갑시켜 미국에 상품을 수출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예를 들어, 최근 몇년 동안 탈(脫)중국을 가속화 해 온 애플의 경우 베트남에 25개의 공식 협력사를 두고 있다. 하지만 이 중 9개는 중국 본토 출신 기업이다. 중국 기업이 베트남에 공장을 세워 생산한 상품이 '메이드 인 베트남' 제품으로 둔갑해 미국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동남아와의 견고한 무역 관계를 이용해, 미국과 동남아 간의 무역 틈새를 파고 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이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필리핀·태국·베트남 등에 직접 투자한 규모는 2018년 500억달러 수준에서 2021년 800억달러로 증가했다.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수출의 7%가 중국에서 일부 생산된 것이란 통계도 있다. 실제 중국이 올 상반기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베트남에 수출한 금액은 490억달러로 5년 전보다 80% 늘었다. 이코노미스트는 "많은 국가들이 중국에서 투자와 중간재를 공급받고 미국과 서방에 완제품을 수출하는 양면 플레이에 만족한다"며 "미국과 중국을 무역, 투자에서 분리시키는 과정은 역설적이게도 중국과 미 우방의 금융·상업적 연결을 더 강화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미·중 기술전쟁, 글로벌 GDP 5% 감소 전망"

미·중간 디커플링이 실제 이뤄진다 해도 글로벌 경제에는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무역전쟁에서 첨단기술 패권전쟁으로 옮겨 붙은 미·중 갈등이 심화될 경우 공급망 불안, 생산성 둔화, 인플레이션, 기술 국수주의 등으로 미국은 물론 글로벌 경제에 큰 타격을 줄 것이란 전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최근 각국이 미국과 중국 중 한쪽을 선택해야만 하는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경제적 손실을 추산한 결과 특정 국가는 국내총생산(GDP)이 최대 4.7%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동남아 국가들의 경제적 피해가 큰 것으로 추정됐다. 국제금융센터는 IMF와 컬럼비아 경영대학원 등을 인용해 기술제품·인적 교류가 위축되면서 글로벌 GDP가 최대 5% 줄어들고, 생산성은 2% 안팎 가량 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첨단제품 교역 둔화,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 지식의 확산 효과 감소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프렌드쇼어링(동맹국 간 공급망 구축)'에 따른 공급망 불안으로 생산공정이 복잡한 첨단제품 가격이 급등하면 글로벌 물가가 0.7%포인트 가량 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반도체는 자급자족시 생산비가 최대 65%, 아이폰은 미국 제조시 원가가 150% 뛸 것으로 추산했다. 또 미국 중심의 선진국과 중국·러시아 중심의 신흥국 간 기술장벽이 형성되고, 국제표준이 분산되면 연간 1조달러의 기회비용이 발생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됐다.

미국 내에서도 미·중 연구 협력 단절시 생명공학, 청정에너지, 통신 등 핵심 과학 분야에서 미국의 발전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시장조사업체 클레리베이트에 따르면 미국 과학 논문의 40% 이상은 해외와의 연구 협력을 기반으로 생산됐는데, 논문을 가장 많이 인용한 국가가 중국으로 나타났다. 미국 주도의 연구 중 중국과 협력한 사례는 나노과학 고품질 분야가 27%, 통신 분야가 33%였다. 반면 중국 주도 연구에선 미국과 협력한 사례가 각각 13%, 10%로 절반 이하에 그쳤다. WSJ는 "미국은 불안정한 시기 최대의 과학 파트너를 외면하고 있다"며 "과학계에선 안보 문제로 중국과의 연구를 단절할 경우 핵심 분야에서 미국의 진전을 위협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고 전했다.

최근 미국이 중국과의 디커플링 대신 '디리스킹(위험회피)'을 강조하는 것도 양국의 전면적 충돌이 글로벌 정세와 경제에 미칠 후폭풍을 우려한 행보로 분석할 수 있다. 미국은 6월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방중을 시작으로 재닛 옐런 재무장관, 존 케리 기후변화 특사 등의 방중 등 양국 간 고위급 회동을 추진하며 극도로 경색된 미·중 관계 개선을 꾀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는 "미국은 통신·전자부품 등 핵심품목, 희토류 같은 원자재 수입 뿐 아니라 기업 매출에서도 중국 의존도가 높다"며 "중국이 희토류·태양광 기술제한, 기업 제재 등 보복에 나서며 상호 피해가 증폭될 소지가 크다"고 내다봤다. 이어 "미·중은 (중국의 세계무역기구 가입 이후) 지난 20여년간 상호의존적 경제구조를 구축해왔다"며 "양국 간 기술갈등에 따른 공급망 불안, 생산성 하락, 인플레이션, 기술 국수주의로 발생할 글로벌 경제적 피해는 무역분쟁 보다 훨씬 클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제1팀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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