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훈기자
산업계에서 가장 흔한 금속인 구리가 미국 정부가 인정한 '핵심원자재(Critical material)'에 포함됐다. 구리가 보조금 수령의 기준이 되는 핵심원자재에 포함되면서 한국 동박 기업들의 현지 공장 건설에도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미국 에너지부(DOE)가 최근 발표한 '2023년 핵심원자재 평가보고서(Critical Materials Assessment)'에서 구리를 핵심원자재 목록에 처음으로 넣었다. 구리는 전도성이 매우 높다. 쉽게 말해 전기를 잘 흐르게 한다. 이 때문에 재생 에너지 발전·저장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미 에너지부는 보고서에서 "구리는 1㎿ 태양광 발전을 위해서 5.5t, 1㎿ 풍력 시스템에서는 1.56t 이 필요하다"며 "전기차용 배터리에는 1대당 약 39~83㎏가 쓰인다"고 밝혔다. 배터리·신재생 에너지 산업이 만개할 것으로 보이는 2025년 이후에는 구리의 중요성이 더욱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보고서가 주목받는 것은 구리를 이용해 배터리 동박을 생산하는 국내 기업의 수혜 가능성 때문이다. 동박은 전기차 배터리의 음극재를 감싸는 얇은 구리 막이다. 전자가 이동하는 경로이자 배터리에서 발생한 열을 외부로 방출하는 역할을 한다. 올해 4월 발표된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세부규정에는 동박이 핵심 광물(Critical mineral)·부품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IRA의 막대한 보조금도 동박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보고서를 통해 구리가 핵심원자재에 포함되면서 보조금 지급 가능성이 올라간 것이다.
아직 미국 정부가 확정하지 않았지만 현지 공장 건설에 보조금이 지급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에너지부는 공급망 차질 위험이 높고, 에너지 생산·전송·저장 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 '핵심원자재'로 규정하고 있다. 핵심원자재 포함 여부는 보조금 수령의 기준이 된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핵심원자재를 가공해 친환경 에너지 분야 공장을 지을때 투자금의 30%를 돌려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투자세액공제(ITC) 혜택이다. 100억원을 투자하면, 30억원을 미국 정부로부터 돌려받고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
유럽 등 해외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는 국내 배터리 동박 기업들에게 선택지가 늘어나는 셈이다. 글로벌 1위 배터리 동박 기업인 SK넥실리스는 올해 2월 유럽 최대 배터리 제조사인 노스볼트와 1조4000억원 규모의 대규모 공급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독일 배터리 기업 바르타와 단독 공급 계약을 맺었다. 다음달 말레이시아에 연산 5만2000t 규모 공장이 가동되고 폴란드에는 내년 생산을 목표로 연 5만t규모의 공장을 짓고 있다. SK넥실리스는 현재 연 5만2000톤 규모의 동박 생산능력을 2025년 25만톤까지 확대하는 게 목표다. 동박 1만t은 전기차 30만~40만대 분량이다.
국내 2위·글로벌 4위권 동박 기업인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도 공장 증설에 속도를 붙이고 있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현재 6만t의 동박을 국내 익산(2만t)과 말레이시아(4만t)에서 생산하고 있는데 스페인 카탈루냐주 몬로이치에 5600억원을 들여 연산 3만t 규모의 공장을 짓고 있다. 2028년 동박 생산량 24만t을 목표로 글로벌 하이엔드 동박 시장점유율 30%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