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현기자
2010년대 초반 한 국내 대기업의 화학 공장에서 물탱크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원인은 불량 '볼트'였다. 이 볼트는 하나에 500원, 제조 원가는 100원에 불과했다. 제대로 된 볼트를 썼으면 됐는데 100원을 아끼려다 공장이 멈추는 사고까지 생긴 것이다.
자동차용 볼트를 만드는 선일다이파스는 '나사 하나 때문에'라는 이름으로 이런 외부 실패 사례들을 모으고 있다. '한낱 나사 하나'라고 여길 수 있지만 볼트는 안전과 직결된다는 것을 되새기기 위해서다. 만드는 것은 볼트지만 자동차를 타는 사람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는 사명감은 선일다이파스를 40년 이상 지탱해 온 힘이기도 하다. 매일 600만 개의 자동차용 볼트를 담금질하는 충청북도 진천군의 선일다이파스의 공장에서 김지훈 대표를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어봤다.
김 대표는 "'안전은 이 일의 본질"이라며 "제조업은 돈을 버는 것 이전에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통 자동차 한 대에 들어가는 볼트는 2000여개, 종류도 다양하다. 선일다이파스의 공장에서 하루에 납품하는 것만 500여종에 이른다. 이 수많은 볼트 중 하나만 삐끗해도 자동차의 안전에 문제가 생긴다. 김 대표는 "한 글로벌 자동차업체의 조사를 보면 자동차에서 볼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금액 면에서 4%에 불과하지만 조립 시간의 90%가 볼트를 조이는 일이고 품질 문제의 94%는 볼트에서 생긴다"고 설명했다. 자동차용 볼트는 사람의 생명과 직결될 수 있는 만큼 그 어떤 제품보다 품질을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얘기다.
선일다이파스의 품질 관리는 40년 이상 축적된 기술이 밑바탕이다. 1976년 선경그룹이 설립한 선경기계에서 출발한 이 회사는 선경그룹 대졸 공채 1기였던 김영조 회장이 1983년 인수해 선일기계라는 이름으로 독립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 자동차용 볼트 자력 생산이 불가능했다. 선일다이파스는 자동차용 볼트를 만드는 금형제조 기술, 생산기술, 설비 등의 국산화에 성공하며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과 함께 성장했다. 김 대표는 "볼트는 금형, 열처리, 도금 등 뿌리 기술의 집합체"라며 "일본, 독일, 네덜란드, 스위스 등에서 기초 기술을 배워 축적했고 40년 동안 자동차 회사에 공급하며 노하우를 쌓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40년 역사가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자동차 산업의 부침은 고스란히 영향을 미쳤다. 1999년 합류한 김 대표도 당시 외환 위기의 여파로 자동차 회사들이 무너지면서 회사가 위기를 겪는 것을 목격했다. 부친인 김 회장에 이어 2007년부터 대표를 맡았는데 이듬해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일감이 확 줄기도 했다. 1주일에 사흘만 공장이 가동될 정도로 주문이 감소했지만 김 대표는 직원들을 내보내지 않고 교육을 하면서 버텼다. '조금 덜 받더라도 다 같이 가자'는 것은 지금도 변하지 않는 김 대표의 경영 철학이 됐다.
진천 공장을 스마트 공장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도 이를 읽을 수 있다, 김 대표는 "스마트 공장은 사람을 줄이는 콘셉트가 아니다"며 "사람이 하던 일을 기계가 하는 대신 직원들에게 더 의미 있는 일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추진되고 있는 스마트 공장 전환이 올여름 마무리되면 공장 내부에는 사람이 운전하는 지게차는 사라지고 더 안전하고 효율적인 작업 환경을 갖추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를 통해 선일다이파스는 지난 3년 동안 매출 25% 성장과 함께 가격 경쟁력·수익성 향상 등의 효과도 거뒀다. 순이익의 일정 부분을 직원들에게 배분하면서 성과는 나누고 있다.
선일다이파스가 볼트를 공급해 안전을 책임지는 것은 국내 자동차 시장만이 아니다. 자동차의 심장인 엔진 체결 볼트, 바퀴를 체결하는 허브 볼트 등을 글로벌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허브 볼트의 경우 전 세계 신차 8대 중 한 대에는 선일다이파스의 제품이 사용된다. 수출 실적도 로컬수출을 포함해 8000만 달러 이상을 하고 있다. 성장할 수 있는 여지는 아직도 무궁무진하다. 김 대표는 "글로벌 시장 공략으로 점유율을 확대하고 친환경·자율주행차 시대에도 핵심 체결 및 구동부 부품 회사로 성장, 더 많은 사람에게 안전하고 즐거운 이동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