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주형기자
인터넷의 익명성이 인간의 폭력성을 부추길까.
일부 온라인 게시판은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해 악성 댓글을 막는가 하면, 아예 게시글이나 뉴스 댓글창을 폐쇄하는 사례도 있다. 인터넷 공간의 참여자들은 현실보다 훨씬 호전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약 8000명의 인터넷 유저를 표본 삼아 분석한 연구에서 '인터넷은 인간의 호전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와 주목받고 있다. 인터넷 이용자들이 호전적으로 보이는 까닭은, 원래부터 호전적이었던 일부 유저들이 눈에 띄기 때문에 생기는 착각이라는 것이다.
해당 연구는 '미국 정치과학 리뷰'에 게재됐다. 연구팀은 인간의 심리가 온라인 환경에서 변화하는지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총 8건의 관련 연구를 조사했다. 행동 실험에 참여한 표본 인원의 수만 8434명에 이른다.
연구팀은 표본을 통해 △온라인 환경이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지 △심한 편향을 만드는지 △사람의 인식을 한쪽으로 쏠리게 하는지 여부를 조사했다.
그러나 연구 결과, 현실에서든 온라인 환경에서든 사람의 행동은 유의미하게 변화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도출됐다.
즉 일명 '트롤러(온라인 공간에서 악성 댓글을 지속해서 쓰는 이용자)'는 어디까지나 현실에서도 반사회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온라인 공간에서 호전적인 사람은 똑같이 현실에서도 호전적"이라고 결론 내렸다.
온라인 공간의 악플 문화는 이미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다. 특히 정치, 연예 등과 관련된 특정 사안에서 온라인 악플의 빈도와 수위는 더욱 강해진다. 국내에서도 일부 유명인, 연예인, 스포츠 선수 등을 표적으로 삼은 '악플 테러'에 온라인 포털 댓글창이 폐쇄되기도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온라인이라는 환경 그 자체는 반사회적인 행동과 큰 관련 없다고 지적한다.
해당 연구 논문의 저자인 알렉산더 보는 "온라인 토론이 현실 토론보다 더 적대적인 이유는 뭘까. 사람들은 인간의 심리가 '대면 상호 작용'에 맞춰져 있고, 익명성 뒤에 숨으면 더 나쁘게 변질한다고 주장한다"라며 "하지만 연구 결과 이런 가설의 증거는 매우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신, 호전적인 온라인 토론은 온라인과 현실에서 모두 호전적인 기질을 보이는 소수 개인이 개입한 결과"라며 "온라인 토론은 현실에서보다 더 눈에 띄기 때문에, 온라인 환경이 더 적대적으로 느껴지는 것일 뿐일 수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즉, 온라인 특유의 신속한 정보 전달력 때문에 소수의 악플러가 더 큰 사회적 파급력을 가지게 됐다는 것이다. 또 보는 소수의 끈질긴 악플러는 대체로 온라인 토론을 '장악'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보통 끈질기게 악플을 달지 않는 일반 온라인 이용자는 토론에 곧 싫증을 느끼고 게시판을 떠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