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원기자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하는 주간 아파트값 통계에 대한 신뢰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당시 집값이 폭등할 때는 체감 집값보다 덜 올라 '통계 조작' 논란을 일으키더니, 최근 집값 하락기에는 민간 통계와 비교해 오히려 더 빠르게 반등하며 '튀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집값 방향에 대한 전망이 엇갈리는 가운데 통계까지 신뢰를 잃으며 시장 혼란은 더 커지는 모습이다. 부동산 전문가들도 정부 산하기관인 한국부동산원 통계가 신뢰성을 잃은 만큼 주간 통계를 개편하고, 기관 독립성을 높이는 등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4일 한국부동산원의 통계를 살펴보면 서울 아파트값은 최근 6주 연속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주간 통계 기준으로 지난 5월 22일 0.03%, 29일 0.04%, 지난달 5일 0.04%, 12일 0.03%, 19일 0.04%, 26일 0.04%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 기간 누적 상승률은 0.22%로 크지 않지만, 서울 아파트값 흐름이 오랜 침체기를 끝내고 상승 전환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시장에선 집값 반등 기대감이 커지고 집주인들의 호가도 조금씩 오르는 분위기다.
반면 대표적인 민간 통계인 KB부동산의 주간 조사에서는 아직 서울 아파트값이 하락세를 보이는 중이다. 같은 기간 KB부동산의 가격 변동률은 -0.109%, -0.040%, -0.055%, -0.082%, -0.070%, -0.054%다. 한국부동산원 통계와 비교하면 상하방 방향은 물론, 추세조차 맞지 않다. 그렇다 보니 일반 국민들은 물론 전문가들도 '혼란스럽다'고 말한다. 서울의 한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한국부동산원과 KB부동산의 통계에 너무 큰 차이가 있다"며 "어떤 것을 가지고 분석해야 할지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집값 흐름이 한국부동산원에서 더 높게 나오는 것은 집값이 크게 올랐던 문재인 정부 때와는 정반대 모습이다. '불장'이었던 2020~2021년 2년간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주간 조사 기준)은 KB부동산이 31.319%였던 것에 반해, 한국부동산원은 7.5%에 불과했다. 두 기관 모두 나름의 조사를 통해 통계를 낸 것이지만 시장에선 한국부동산원 통계가 체감 집값과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2020년 7월에도 김현미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3년간 서울 주택 매맷값이 11.28% 올랐다고 말한 것에, 시민단체가 KB 통계를 인용, 52% 올랐다고 반박해 정부의 '통계 조작'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한국부동산원 통계가 집값 상승기와 하락기 모두에서 체감 집값과 차이를 보이는 것은 국토부 산하기관으로서의 한계 때문이란 지적이 다수다. 집값이 폭등할 때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여론이 크게 나빠지니까 통계를 낮게 조정할 필요가 있고, 집값이 하락할 때는 경기와 역전세 문제가 커질 수 있으니 통계를 다소 높게 조정할 유인이 있다는 것이다. 한문도 서울사이버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한국부동산원 통계는 정권 입김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며 "전 정부에서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고 말했다.
그럼 한국부동산원 통계의 신뢰성 문제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는 통계 산정 방식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홈페이지에 게재한 조사방식을 보면 한국부동산원은 조사 대상인 표본 주택에 실거래 사례가 있으면 이를 검토한 뒤 '표본가격'으로 산정하고, 실거래 사례가 없으면 같은 단지의 비슷한 거래 사례를 활용해 '표본가격'으로 산정한다. 실거래가 있든, 없든 표본가격을 산정하는 셈이다. 반면 KB부동산은 표본 주택에 실거래가 있으면 실거래 가격을, 실거래가 없으면 해당 지역 공인중개사 조사를 통해 표본가격을 뽑아낸다.
한국부동산원 '표본조사'의 가장 큰 단점은 조사 과정에서 주관이 개입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한문도 교수는 "한국부동산원 주간 통계에는 정성적 요인이 과도하게 들어가지만 KB부동산은 정성적 요인이라도 조사 담당자의 개인적 의견보다는 호가로 많이 메꾸기 때문에 더 정확하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기관들이 KB부동산 시세를 가지고 담보대출을 해주는 만큼 (통계를) 실제 가격에 더 충실하게 맞춘다"며 "이에 반해 한국부동산원은 공무원인 만큼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KB부동산 등 민간 통계는 이해관계가 적으니 표본조사라도 의도가 개입될 가능성이 작지만, 정부 통계는 그렇지 않다. 특히 KB부동산은 실거래가가 없는 표본가격에 공인중개사의 호가가 주로 반영되는 반면, 한국부동산원은 표본 주택에 전문조사원이 '거래 가능한 가격'을 입력하는 구조다 보니 자의적인 '정성적 요인'이 더 개입될 수밖에 없다. 대표 아파트 단지를 뽑아 집값을 조사하는 '표본조사' 방식에선 일반적으로 통계가 실제 가격 흐름보다 약하게 나타나기 마련이지만, 한국부동산원 집값 통계는 그 범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거래된 것만 가지고 (가격)지수를 만들어도 그것이 시장 전체의 흐름을 보여주지 못하는데, 표본 주택을 몇만 가구 뽑아놓고 거래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누가, 어떤 재주로 정확한 가격을 알 수 있겠나"라며 "조사자가 평가하면 집값이 높을 때는 수치를 낮게, 집값이 낮을 때는 수치를 높게 할 유인이 크다"고 지적했다. 한국부동산원은 신뢰성 논란이 반복되자 올 초 표본 규모를 주간 조사 아파트 기준 3만2900가구로 늘렸지만, 이 역시 여전히 KB부동산(6만2220호)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이에 일각에선 부동산 통계 조사 방식을 실거래가 기반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성적 요인을 없애고 통계의 실제 집값 반영도를 높여야 한다는 취지다. 물론 실거래가로 하면 들쑥날쑥 편차가 너무 크고, 시세 조작 목적의 허위 매매신고로 정보가 왜곡될 가능성도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추후 계약 취소된 거래와 과도하게 높거나 낮은 비정상 거래를 제외하고 실거래가 통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선 허위 거래를 걸러낼 시간이 부족한 주간 통계는 없애야 한다.
실제 미국, 영국, 독일, 일본, 프랑스 등 상당수 주요국도 실거래가 기반으로 주택가격지수를 만들어 공표하고, 우리나라처럼 주간 단위 발표는 거의 없다. 임재만 교수는 "발표하는 통계는 실거래가 자료를 가지고 만들어야 하는데, 시세 조작을 위해 거래했다고 신고만 하고 등기까지 안 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등기된 것만 가지고 통계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통계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 나올 수밖에 없다"며 "우리나라처럼 주간 단위로 (집값 수준을) 발표하는 나라는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부동산원의 주간 부동산 통계 부실 문제는 하루 이틀 일은 아니다. 통계청은 2020년 말 발표한 정기통계품질진단 보고서에서 한국부동산원의 주간 아파트값 조사 통계에 대해 "주간 단위로 아파트 가격(매매, 전세) 등을 조사하기는 쉽지 않다"며 "아파트 가격을 조사하기 위해 실거래가 등과 같은 참고자료를 이용하고 있으나 이를 이용하기에 어려움이 있고, 주간 아파트 가격조사의 표본이 월간보다 적기 때문에 이로 인한 오차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택담보대출 업무나 부동산 시장 흐름 파악 등을 위해선 주간 단위의 통계도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KB부동산 등 민간 통계로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 임재만 교수는 "시장 흐름을 빨리 파악하려고 미국에서도 일간 단위 통계를 만들자는 주장이 나오지만 (단기 통계를) 정부가 할 필요는 없다"며 "정부가 내부적으로 부동산 시장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매주 추세를 파악하더라도 (정확하지 않은 통계를) 발표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KB국민은행은 대출 등 업무를 하기 때문에 주간 통계가 필요하지만 한국부동산원은 꼭 낼 필요가 없다고 볼 수 있다"며 "지금처럼 주간 변동률이 0.01%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실제 큰 의미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위원은 "정부가 (통계, 부동산 대책 등에) 앞장서 나서면 전 국민의 관심이 부동산으로 쏠리고 부작용이 나타난다"고 덧붙였다.